임향자 《신화》

 

●1977 Cosmos #01 ⓒ임향자

 

사진가로서 오랜 침묵을 깨고 221일부터 성곡미술관에서 개인전을 여는 임향자 작가를 만났다. 어쩐지 작가라는 말이 어색한 것은 그녀가 수십 년 동안 사진 관련 사업을 통하여 얻은 대표라는 호칭에 더 익숙한 탓이다. 지금은 한국사진예술원(SPC)의 원장이고 그 이전에도 사진 원고 라이브러리를 주업으로 했던 타임스페이스 대표이며 출판사인 사진비평사 대표로서 그녀에겐 항상 CEO의 이미지가 강했다. 그런데 1983년 개인전 이후 41년 만에 《신화》라는 개인전을 열고 사진집을 출간하면서 다시 사진가로 돌아왔다.
 

 

당돌한 도전

부산에서 고등학교를 마친 임향자(1951 ~ )는 딸을 서울로 보내기 싫어하는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당시엔 사진전공으로 유일하던 서라벌예술대학(중앙대학교 예술대학 전신) 사진과에 입학했다. 그리고 대학을 졸업한 후에는 사진 선진국으로 동경하던 일본 유학을 감행했다. 서울 유학도 손사래를 친 부모였는데 스물두 살의 딸이 이번엔 일본이라니 오죽했을까 싶은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의 뜻을 굽히지 않은 임향자의 용기와 도전정신은 참으로 놀랍다.

1973년에 하네다 공항에 내린 그녀는 커다란 캐논 카메라 광고판을 보며 드디어 일본에 왔다는 실감, 니콘과 캐논 카메라, 후지필름 같은 세계적인 사진 산업의 메카이며 앞서가는 사진 문화의 나라에 왔다는 생각에 감개무량했다. 물론 의욕만 앞섰을 뿐 일본어를 잘하는 것도 아니고, 일본에서 유학할 경제력이 갖춰지지도 않은 무모한 도전이었다. 그로부터 10년 동안 그녀는 학교에 다니면서 유명 사진가의 조수로 일하는 한편, 아르바이트로 돈을 벌어야 하는 숨 가쁜 나날을 보냈다. 13역으로 고달픈 생활이었지만 일본대학 예술학부에서 사진을 공부하고 규슈산업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는 동안에 사진 촬영과 프린트 작업은 물론이고 프로정신과 촬영자의 자세, 모델에 대한 존중 등 사진가로서 기본과 테크닉을 배우고 다졌다.

1970년대 일본의 사진계는 서양에서 사진을 체험하고 돌아온 유학파를 중심으로 현대사진의 싹을 틔우던 시기였다. 그녀가 공부하던 규슈산업대학원에도 이런 사진가들이 강사로 초빙되면서 사물의 외형이 아니라 사물에 내재된 그 무엇, 초현실적이고 비일상적인 사진을 추구하는 흐름이 형성되었다. 또한 당시 인물사진의 대가였던 가타야마 세츠조(片山攝三) 선생의 스튜디오에서 일하면서 인물사진의 깊이를 배우고 침묵 속에 많은 이야기가 담겨있음도 배웠다. 종일 스튜디오에 있어도 학생들에게 몇 마디 말을 하지 않는 침묵의 강의를 들으면서 말보다 그 이면의 것들에 주목하고 표현하는 법을 배운 것이다.

그녀는 운 좋게 좋은 선생님들을 만나서 인간적으로 따뜻한 보살핌을 받고 철저하게 사진을 배웠다는 말을 하지만 아마 그들에게는 누구보다 열심히 움직이고 싹싹하고 민첩한 한국에서 온 여학생이 대견했을 것이다. 성의있게 편의를 봐주고 갈 길을 열어주던 스승 덕분에 공부를 마칠 수 있었고 1982년에는 도쿄 신주쿠 니콘살롱에서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초대전을 갖는 영광을 안았다. 유학을 떠나며 꿈꾼 니콘살롱에서 전시하겠다라는 꿈을 이룬 것이다. 또한 같은 해에 후쿠오카시립미술관에서 스승인 사진가 가타야마 세츠조를 촬영한 孤影 - 예술가의 주변전까지 마치고 당당히 귀국했다.
 

 


 

처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

일본에서 고되긴 했지만 보람 있던 20대를 보내고 1982년에 귀국한 임향자는 그 해에 귀국전 어느 예술가의 초상을 발표하고, 1983년에는 개인전 COSMOS를 여는 등 사진가로서 활발한 활동을 예고했다. 그러나 10년 만에 돌아온 고국에서 사진가의 꿈을 펼치려던 그녀는 너무나 열악한 한국 사진의 현주소에 실망하고 낙담했다. 그것이 잠시 사진가의 꿈을 접고 한국에서도 제대로 된 사진 인프라를 만들겠다는 도전을 하게 했다.

“1983년에 내 사진을 쓴 잡지사에 원고료를 안 주냐고 물었다가 면박당했어요. 실어주면 고맙지 무슨 원고료 타령이냐는 것이었죠. 일본에서는 저작권을 존중하여 작게 실린 사진 한 장이라도 고료를 챙겨주고 바이라인을 넣어주었거든요. 순간 멍해지더라고요. 아니, 그럼 사진가들은 어떻게 살지?”

그때 떠오른 것이 조수로 일했던 후지이 히데키(藤井秀樹) 선생님 스튜디오 근처에 있던 사진저작권 대리회사, 즉 스톡포토 에이전시였다. 사진가 임향자가 과감하게 CEO로 변신하는 순간이었다. 그녀는 1985년에 타임스페이스라는 사진 라이브러리를 시작했고 마침 1986년 아시안게임과 88서울올림픽의 분위기를 타고 사업이 확장되며 호황을 누렸다. 올림픽을 앞두고 다양한 사진 이미지가 필요하자 국내외에서 이미지를 대여해서 쓰면서 사진저작권에 대한 인식이 자리 잡기 시작한 것. 사업이 자리를 잡자 남편인 평론가 김승곤 선생과 함께 계간지 사진비평을 창간했고 1999년부터는 젊은 작가를 북돋우는 사진비평상을 제정하여 한국 사진에 새바람을 일으켰다. 한국도 1980년대 후반부터 유학파들이 돌아와 한국사진의 수평전같은 대규모 그룹전을 통해 현대사진의 물결이 일파만파 퍼지던 시기였다. 전면에 나선 사람들은 유학파 중심의 스타 사진가들이었지만 이론적인 뒷받침과 재정적인 후원을 한 김승곤 임향자 부부의 숨은 공로를 간과할 수 없다.

그 이후 2천년대에 디지털 시대가 열리면서 원고 시장이 활기를 잃어버리자 그녀는 새로운 사업을 구상했다. 유행처럼 번지던 대학의 여러 최고위과정들을 등록해 다니다가 그들의 과정 가운데에 사진이 빠져있음을 발견한 그녀는 처음에는 사진 프로그램도 만들어보라고 대학에 제의하다가 결국 스스로 사진 전문 CEO과정을 개설하게 되었다. 자기 분야에서 성공한 전문가들이 사진에 관심을 갖는다면 사진계의 파이도 커질 수 있고, 또한 평생 자신의 분야에서 한 길을 걸어온 그들이 사진을 통해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는 기쁨을 누릴 수 있게 하자는 목표로 2009년에 한국사진예술원 SPC사진클럽을 시작한 것이다.

“10여 년 동안 열심히 사진 CEO과정을 운영하다가 코로나로 모든 게 멈추었을 때 비로소 나에게 집중하는 시간을 갖게 되었어요. 그동안 사진을 놓지 않았지만 나를 돌볼 시간이 없었다고 할까요. 사실 속으로는 사진가 임향자로 돌아가고 싶다는 마음이 한구석에 늘 있었거든요.”

1990년대에는 두세 차례 그룹전에 참여했지만 2000년 이후 전시에 참여한 적이 없던 그녀에게 2020년부터 시작된 코로나19 팬데믹은 전환점이 된 것 같다. 2021년에 서울시립북서울미술관에서 열린 그룹전 한국여성사진사2022년에 같은 장소에서 열린 정착세계전에 참여하면서 눌러왔던 작가의 욕망이 분출된 셈이다. 이에 호응하듯이 일본에서 그녀의 인물사진 작품을 소장하겠다는 연락이 닿았고, 한미사진미술관에도 작품이 소장되는 등 그녀의 열망을 부채질하는 일들이 연속되었다.
 

 

코스모스와 신화의 만남

41년 만의 개인전이라면 역시 용기가 필요할 것 같다. 그러나 이번에도 임향자의 도전정신은 녹슬지 않았다. 1970년대 이후 50년 동안 촬영해온 사진들은 마치 같은 시기에 찍은 사진처럼 일관된 맥락을 갖고 있었다. 무심히 지나쳐도 하등 이상하지 않을 자연풍경에서 피사체를 찾아내고 그것을 독특한 시선으로 해석하며 사물의 깊은 침묵 속에 잠긴 이야기를 풀어내는 그녀의 흑백 사진들은 깊고 무거우며 음울하고 신비롭다. 이 사진에 대하여 이경률 중앙대 사진과 교수는 사진의 응시자는 거대한 바윗돌과 하늘로 치솟은 넝쿨 등에서 보이는 대상을 읽는것이 아니라 그것으로부터 발산되는것을 음미하게 한다. 결국, 사진은 초현실적인 징후로 드러나는 무언의 자동생성이 된다.”고 말했다.

또한 서울시립북서울미술관에서 열린 2021 서울사진축제의 주제전 한국여성사진사- 1980년대 여성사진운동의 기획자 이경민은 사진집 서문에서 “10명의 참가자 중 한 명으로 초대된 임향자의 10×14인치 안팎의 <어느 예술가의 초상> 연작 3점과 연작 8점은 40년 가까운 세월이 지난 프린트임에도 흑백 은염사진이 가진 섬세하고 깊은 톤이 유감없이 재현되어 있었다. 전시가 끝난 후 이들 작품은 현재 건립 중인 서울사진미술관(2024년 개관 예정)에 수집, 수장고에 영구 보존되어 사진가 개인으로서 임향자의 작품이 공공의 아카이브 자산으로 거듭나게 되었다고 설명했다.

우주의 질서와 무질서, 존재에 깃든 신화적인 요소, 코스모스와 신화 사이에서 인간이 느끼는 경외와 경이를 담아낸 임향자의 작품은 오랜 시간 숙성된 작가정신과 감성을 유감없이 발휘한다. 이제까지 참아온 것이 용하다는 생각이 드는 임향자 작가의 에피소드 하나. 일본대학에 다니던 시절 단짝 친구였던 미애 짱40년 만에 한국에 오면서 낡은 헝겊 지갑을 선물로 가져왔다. 그 지갑에는 1200엔이 들어있었다. 유학 시절 세계적인 사진가들의 오리지널 프린트를 보기 위해 둘이 매달 300엔씩 모아서 어빙 펜의 전시도 가고 했었는데 그때 쓰고 남은 돈이라고 했다. 그것을 40년간 간직한 친구에게 감동했다고 말하는데, 작은 것이라도 오래 간직했다가 시간의 기억을 돌려주는 것이 일본인들의 특성이 아닐까 싶다.

이번에 임향자 작가도 사진가로서 오래 품어온 것들을 우리에게 내보인다. 나이 70이 넘으면서 너무 늦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과 함께 지난 50년 작업을 정리해야 새로운 작업을 시작할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여는 전시이기에 이번 전시는 앞으로 사진가로서 임향자의 본격적인 행보의 출발점이 된다. 친구 미애 짱이 건넨 지갑처럼 오랫동안 봉인되었던 사진가 임향자의 축적된 작품성이 어떻게 발현될지 궁금하고 기대된다
 

글 윤세영 편집주간
해당 기사는 2024년 2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