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안나 | 불안(不安)과 불감(不感)의 이중주

 
Ending cut #1 ⓒ임안나
 
현실이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시대다. 9.11테러, 걸프전에서 패트리어트 미사일 공격, 빈 라덴 사살작전 등을 실시간 뉴스로 접하며 이것이 현실인지 영화인지 당혹감을 느낀 적이 있을 것이다. 혹시 미사일이 목표지점을 정확히 타격하는 장면에서 감탄한 나머지 박수를 칠 뻔 하지는 않았는지 모르겠다. 영화가 아닌 현실에서는 미사일이 명중한 그곳에서 누군가 죽고 다친다는 사실보다 가공할 무력과 스펙터클한 장면에 더 몰입했을지 모른다. 이런 경험의 반복은 전쟁과 재난에 대한 불안과 불감증을 동시에 증대시킨다. 임안나 작가는 바로 이러한 현대인의 불안감과 불감증의 이중성을 간파하고 그것을 사진으로 환기시키는 작업으로 주목을 받고 있는데, 그녀의 작품은 타인의 고통에 냉정하고 무관심한 현대인의 정곡을 아프게 찌른다.
 


△ Romatic Soldiers #13 ⓒ임안나


△ Last Scene #11 ⓒ임안나


△ Restructure Climax #7 ⓒ임안나
 
전쟁과 평화
임안나(1970~ ) 작가의 작업은 2010년을 전후하여 명확하게 구분된다. 사진학과를 졸업한 후 미국유학을 다녀오고 젊은 작가로서 정체성을 찾기 위한 자아 탐색의 사진을 발표하면서 한편으로는 작가로 살아남기 위해 애를 썼던 그녀는 2010년, 마흔을 넘기면서 돌연 달라졌다.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던 시선이 사회로 향하고 타자에게 눈을 돌리면서 그 이전과는 완전히 달라진 작품을 내놓기 시작한 것. 《클라이맥스의 재구성》 《차가운 영웅》 《불안의 리허설》 《비극의 시뮬레이션》 등 최근 10년의 전시에서 모두 전쟁이나 재난을 소재로 현대인의 불안 심리를 꿰뚫어 보는 한편 타인의 비극에 무감각한 불감증이란 이중적 태도에 주목한 작품을 보여주었다.

임안나 작가의 작품을 보면서 왜 굳이 접근금지, 촬영금지라는 철벽에 가로막힌 어려운 소재를 선택했을까 궁금했다. 전쟁을 겪었고 지금도 남북이 대치해 있는 우리 사회에서 군과 무기는 무조건 기밀사항이고 외부의 시선을 터부시해왔다. 그런 경직된 분위기에서 군부대에 있는 무기를 촬영하겠다고 나선 용기(?)의 정체가 궁금했던 것.

사실 작가가 처음부터 거대담론을 생각하며 무기를 소재로 하는 작업을 시작한 것은 아니라고 했다. 공부를 마치고 2000년 1월에 귀국한 뒤에도 10년 동안은 ‘어떻게 해야 작가로 살아남을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 유명인들의 인물사진이나 광고사진을 찍는 생계형 작업을 하면서도 항상 내 작업을 하고 싶다는 내면의 소리와 충돌했다. 그런 부대낌이 계속되면서 내면이 부글부글 끓어오를 때쯤 어느 날 용산 전쟁기념관에 전시된 무기가 눈에 들어왔다.

“분명 쉽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어려워야 그 일에 더 몰두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마 작가로서 나 자신을 시험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반전주의, 반미주의 같은 거창한 생각으로 출발한 것은 아니었어요.”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그녀가 태어나 자란 고향이 경기도 김포의 통진, 지금도 해병대가 주둔하고 있는 곳이라는 점이다. 심지어는 초등학교 1학년부터 중학교 3학년까지 군부대 주택에서 살기도 했다고 한다. 아버지가 군인인 친구들이 많았고, 마을의 버스정거장에는 늘 군인 두어 명이 버스를 기다리고 있던 장면을 기억한다.

“그러나 몇 년 전까지도 나의 작업과 고향을 연결시키지 못했는데 인터뷰 중에 한 기자가 고향을 물어보더라고요. 그러고 보니 사진학과에 입학할 때도 막연히 종군기자를 꿈꾸었었어요.”

까맣게 잊고 지낸 기억이 2004년부터 3년간 한 정치인의 사진촬영을 하면서 다시 살아났다. 그 정치인의 군부대 방문에 동행하면서였다. 그 이후 용산전쟁기념관만이 아니라 여러 도시에 무기가 전시된 장소가 의외로 많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무기에 대한 관심이 생겼다.

“사람들은 모두 평화를 원한다고 말하면서 천문학적인 돈을 들여서 전쟁무기를 만들어요. 아이러니죠. 그런데 판매하고 거래된다는 점에서 무기는 엄연히 상품이고 저 어마어마하게 비싼 상품이 판매되고 존재하려면 결국 전쟁이 일어나야 하는 거잖아요. 상품이란 소비되어야 하니까요.”

그런 관점에서 무기에 대한 자료를 찾아보고 개념을 정리하면서 2009년에 용산전쟁기념관에 전시된 무기를 촬영하기 시작했다. 비로소 작가로서의 불확실성을 떨쳐버리고 불안과 불감의 탐색을 향해 그 첫발을 내디딘 것이다.
 


Restructure Climax #1 ⓒ임안나



△ Frozen Objects #18 ⓒ임안나
 
전쟁과 재난
무기를 촬영할 때 선택한 방식 또한 경험에서 우러나온 것이었다. 자동차나 전자제품처럼 무기도 상품이라는 관점에서 ‘광고사진 찍듯이’ 해보자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제품사진을 찍듯이 조명을 설치하고 대형카메라를 사용했다. 눈이 부시도록 ‘조명을 받은’ 무기는 조명발을 받는 여느 주인공들 못지않게 아름답게 빛났다. 무기의 폭력성조차 잠시 잊게 할 정도로 폭격기, 탱크, 공격용 헬리콥터의 부드러움과 날카로움, 육중함과 날렵함이 조화를 이룬 매력적인 디자인이 매혹적이다. 아름다운 무기, 평화를 위한 전쟁이란 것이 과연 성립되는가? 지난 수천 년의 역사를 돌아보면 전쟁은 끝없이 이어졌지만 아직도 인류의 평화는 요원하지 않은가?

실제 무기의 촬영에 이어 작가는 〈Romantic Soldiers〉, 〈Last Scene〉, 〈Monologue〉시리즈에서는 프라 모델(plastic model)을 이용해 상황을 연출했다. 〈Romantic Soldiers〉에서는 군인들이 작전하고 공략하는 대상이 사탕, 과일, 고기, 케이크 같은 낭만적인 먹거리라는 점이 흥미롭다. 우리가 무엇을 위해 싸우는가에 대한 작가의 역설적인, 그러나 어쩌면 가장 정확한 답이라고 할까. 그 외에도 〈Last Scene〉에서는 ‘꽃과 군인’이라는 부조화가 페미니즘의 관점에서 전쟁과 여성, 폭력과 여성의 문제를 상기시키는 등, 여러 해석을 가능케 한다. 또한 〈Monologue〉시리즈에서는 거울을 등장 시켜 거울 앞에 선 무기의 독백을 듣게 된다. 전쟁이 장난(게임)이 아닐진대, 지금도 지구의 여기저기에서 비극을 낳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전쟁은 게임이 되고 영화가 되고 종국엔 폭력에 대한 불감증을 유발한다. 내 발밑에서 폭탄이 터지지 않는 한, 강 건너 불구경인 셈이다.

《클라이맥스의 재구성》과 《차가운 영웅》에서 보여준 전쟁에 대한 의구심은 이후 재난이란 이슈로 옮겨갔다. 아무리 남북대치상황이지만 거의 날마다 일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재난이 전쟁보다 더 당면한 문제였으니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런데 거의 날마다 전해지는 재난뉴스 역시 불안과 공포를 주기도 하지만 그것에 익숙해지면서 오히려 불감증을 불러온다는 사실이다. ‘안전 불감증’이란 말은 이미 뉴스에서 가장 자주 접하는 단어가 되었다.

임안나 작가는 서울에서 대참사가 일어났다는 가정하에 현장을 연출하고 작업에 동참해줄 지원자의 도움을 받아 《불안의 리허설》을 촬영했다. 출연자들이 모두 연출된 현장임을 알고 있고 각자 그런 상황에서 행동할 수 있는 모습을 자유롭게 표출하는데, 꼭 영화의 한 장면에서 본 것 같은 기시감을 준다. 그런 상황의 이미지를 너무나 많이 본 경험에서 우러나온 그들의 표정과 동작이 기묘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너무나 많은 이미지에 노출되는 현대인들에겐 현실과 가상의 경계가 모호하듯, 내가 말하고 있는 것, 내가 반응하고 있는 것 자체가 원래의 나의 것인지, 언젠가 입력된 장면을 연기하고 있는 것인지 불분명하고 혼돈스럽다. 반면 《비극의 시뮬레이션》은 2016년에 실제로 서울 재건축아파트에서 벌어진 재난대비훈련을 촬영한 것으로서 3천 명이 참여한 재난 모의훈련이었다. 앞의 작업들은 작가가 자신의 의도대로 상황을 연출한 것이지만 이 시리즈는 눈앞에 벌어지고 있는 상황을 작가가 수동적으로 스트레이트하게 찍은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펙터클한 영화촬영의 스틸 컷처럼 다가온다는 점에선 전작(前作)과 다를 바가 없다. 정말, 현실과 가상의 경계는 무너진 것일까?
 


Rehearsal of anxiety_Action #3 ⓒ임안나


Rehearsal of anxiety_Action #10 ⓒ임안나
 
불안과 불감의 엔딩
10년간 전쟁과 재난이라는 무겁고 무서운 주제에 천착해온 작가는 그 탈출구로 〈엔딩 컷〉을 생각하는 것 같다. 촬영을 하면서 작가 자신도 “무기란 누군가의 재난이며 불행이다. 그러나 끔찍한 무기를 촬영하면서 나 자신도 그것에 무디어지는 것을 발견했다”고 고백한다. 대부분의 종군기자들은 반전주의자이고 평화주의자이기 때문에 목숨을 걸고 전쟁터에 나가 전쟁의 참혹함을 알리지만 거꾸로 대중들은 그 이미지에 익숙해지면서 비극에 대한 불감증에 이른다는 아이러니 앞에서 작가는 점점 이제는 마무리 짓고 다음 작업으로 넘어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 같다.

“그 돌파구가 엔딩 컷이었어요. 이 시리즈에서는 무기를 천으로 덮거나 조명을 과다하게 주어 무기의 실체를 날려버리는 방식을 택했어요. 덮어서 보이지 않거나 조명과다로 디테일을 죽임으로써 관람자가 생각해볼 시간을 갖게 하고 싶었습니다.”

영화와 현실이 다른 것은 영화에는 엔딩 컷이 있다는 게 아닐까. 아무리 비극적인 전쟁영화라도 러닝타임이 지나면 엔딩 컷과 함께 슬픔은 끝난다. 임안나 작가도 이제는 엔딩 컷으로 버거운 작업에서 벗어나고 싶은지도 모른다.

임안나 작가는 처음엔 사진의 순간포착에 매료되어 사진학과에 진학하게 되었지만 그녀가 학교를 다니던 90년대 초는 우리나라에 현대사진의 바람이 거세게 불기 시작한 즈음이었다. 호기심이 많아서 새로운 것에 잘 빠지는 그녀는 사진적인 사진에서 예술적인 사진으로 변심(?)하면서 종군기자의 꿈은 작가로 바뀌었고 이를 위해 비디오, 영화, 혼합매체 등 다양한 장르에 관심을 갖고 공부했다.

“저의 롤 모델이 사진가이자 영화감독인 아네스 바르다(Agnès Varda)예요. 사진을 찍듯이 영화를 찍은 그분처럼 영화를 찍듯이 사진을 찍고 싶었어요.”

임안나 작가의 사진이 영화의 스틸 컷 같은 느낌을 주는 이유다. 그녀는 2019년에 프랑스 아를국제사진축제에서 포트폴리오 리뷰 최우수상을 받은 데 이어 다음해에는 제11회 일우사진상 출판부문을 수상했다. 마침 50살이 되던 해여서 큰 선물을 받은 것 같았다고 말한다. 그동안 사람들이 자신의 사진을 제대로 읽어주길 간절히 원했던 소망이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그리고 《불안의 리허설》을 큰 공간에서 볼 수 있기를 원했다는 점에서 두 개의 상은 작가에게 큰 위로와 기쁨이 되었다. 일우사진상을 받음으로써 2020년 11월부터 올봄까지 일우사진스페이스에서 큰 사이즈 전시를 할 수 있었다는 점이 무엇보다 기뻤다고 말한다. 작가는 지금도 전쟁과 재난에 관한 작업은 진행 중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이미 새로운 작업이 마무리 단계에 있다고 밝힌다. 마흔에 그랬듯이 쉰을 넘기며 새로운 변신을 꿈꾸고 있는 것이다.


 
 

Simulation of tragedy #4 ⓒ임안나
 
안나의 질문
‘안나’라는 이름에서 감지하듯 그녀의 부모는 독실한 가톨릭 신자인데 임안나 작가가 태어난 곳도 성당 안 사택이었다고 한다. 그런 분위기에서 성장한 탓인지 어려서부터 유난히 마음이 약해서 타인과 따지고 싸우지를 못했다. 그런데 사진가가 되어 예술이란 이름으로 질문을 던질 수 있으니 그게 참 좋다고 말했다. 사진을 통하여 세상 사람들에게 계속 질문을 던질 수 있다는 점에서 카타르시스를 느낀다는 것.

“무기는 비극의 상품이란 것을 아세요? 평화를 지키기 위한 전쟁이라면 그 뒤의 불행과 관계없이 정당성을 인정받을 수 있는 건가요? 전쟁영화를 보면서 그것이 나의 비극일 수 있다고 생각하며 보나요?”

아네스 바르다는 인터뷰 중에 이런 말을 했다. “사실 세상은 엉망이에요. 하지만 외면할 수 없죠. 엉망인 상태를 직시해야 해요.” 세상이 아무리 엉망이어도 사진가는 세상을 응시하는 일을 멈출 수 없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세상을 향한 ‘안나의 질문’도 계속될 것이다.
 

글 윤세영 편집주간
해당 기사는 2021년 9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