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형근 | 근원을 향한 내면의 소리


Red hole, 2004 ⓒ박형근



Tenseless-5, Swamp, 2004 ⓒ박형근


뭔가 불편하고 음울하다. 우리에게 친숙한 나무와 숲, 바위와 바다가 호락호락하게 다가오지를 않는다. 작품에서 사실성이 배제되지 않았는데도, 완전히 사실적으로 보여주고 있을 때조차도 표면보다 그 이면을 살피고 기웃거리게 만든다. 박형근 작가(1973~ ) 자신이 실재와 비현실, 시간과 공간의 안과 밖, 그 가장자리(on the edge)에서 이쪽도 저쪽도 아닌 난해한 경계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본다는 것의 의미를 사유하고 표면의 이면을 끄집어내어 다층적인 이미지를 생산해왔다. “Untitled”는 제목 그대로 특정할 수 없는 모호함을, “Tenseless”는 제목과 반대로 미묘한 긴장감을 유발한다. 작가가 편안하게 소통하는 방법을 택하지 않고 굳이 불통의 고통을 감수하려 함은 세상을 보는 익숙한 관념을 흔들어 새로운 세계를 볼 수 있도록 하고 싶어서이다. 그것이 예술이고 예술가의 몫이라고 생각하므로.

섬(제주도)에서 섬(영국)으로
평생 작업을 하는 작가에겐 그의 작업을 관통하는 근원적인 요소가 있는데, 박형근 작가에게 그것은 제주도인 것 같다. 그의 사진 곳곳에서는 제주도의 날것이 보인다. 뭔가 신비롭고 낯설면서 원초적인 기운이 내재되어 있다. 아주 오래전 격렬한 뒤틀림 끝에 육지에서 떨어져 나왔거나 아니면 안간힘의 용솟음으로 바다에서 튀어 올라와 주류의 역사에서 오래도록 고립되며 신화를 만들고 슬픈 전설을 만들어온 제주도의 기운이 그의 사진에 배어 있다.

제주도에서 태어나 광주대학교로 진학하기 전까지 그곳에서 성장한 작가에게 제주도는 사진작업의 처음이자 훗날 완결의 공간이 될 것 같다. 사진을 시작하면서 그의 카메라에 담은 첫 대상이 제주도의 풍경이었다. 사진과 학생이 되어 제주도를 일주하면서 그동안 발견하지 못했던 제주를 보게 되었다. 타인의 시선으로는 유토피아 같은 아름다운 섬이지만 ‘과연 유토피아인가’라는 의심의 시선으로 바라본 작업이 “The Second Paradise”였다.(p.30) 그는 늘 육안으로만 보았던 제주도를 카메라의 눈으로 보게 되었을 때, 비로소 뚜렷하게 보이고 무엇을 볼 것인가를 선택해야 하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나의 시각으로 세상을 본다는 것에 설렜어요. 그래서 내가 본 세상을 전하는 다큐멘터리 사진가가 되어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그러나 학년이 올라가면서 사진이론을 공부하고 사진을 통한 예술적, 철학적 표현에 관심을 두게 되면서 유학을 결심했고 순수작가를 꿈꾸게 되었다. “The Second Paradise”는 2002년 영국유학의 문을 열어주었다. 자유분방하고 실험적이며 학제 간 경계가 없는 급진적인 분위기가 좋아서 선택한 런던 골드스미스컬리지는 그가 사진가로서 자신의 길을 찾아가는 데에 절대적인 영향을 주었다.

“너, 했던 걸 하려고 여기까지 왔니?”

담당교수의 이 말은 그에게 충격을 주었다. 엄청난 경쟁을 뚫고 입학할 수 있게 해준 예전의 작업을 넘어서야 한다는 뜻이었다. 굳이 영국까지 와서 한국에서 하던 대로 한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는 이 말은 그에게 커다란 전환점이 되었다. 그는 학습되어온 관념과 시각을 지우는 시간을 갖기 위해 하루 8시간씩 숲이나 습지 등을 걸으며 생각했다. “나는 그동안 무엇을 갖고 작업했나? 나를 구성해왔던 것이 나의 정체성인가?”

하루 종일 몸이 파김치가 되도록 걷고 생각했다. 그러다 지치면 숲속에 앉아 명상에 들어갔다. 갖고 있는 기존의 관념을 비우고 내면에 있는 본래의 나의 감각을 깨우고자 한 것이다. “내 몸이 흐느적거리도록 피곤할 때 내 정신은 은화처럼 맑다.”고 했던 시인 이상의 말처럼 몸을 극한으로 몰아붙이면서 1년을 지내고 나자 비로소 눈에 보이지 않던 것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 이후 그의 대표작이 된 “Untitled”와 “Tenseless”시리즈가 시작된다.(p.24, 26, 28)


의심과 불통
학습된 것들에 대한 의심, 그동안 의심 없이 받아들인 것들에 대한 의구심은 그의 작업의 출발점이다. 오래된 사진의 역할은 메시지의 전달이었다. 사진을 읽고 언어화할 수 있어야 사진을 이해했다는 편안함을 느끼는데 그의 사진은 보이는 것과 의미의 관계를 흐트러뜨린다. 닫히고 정해진 정답을 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의심하고 헷갈리게 함으로써 소통을 어렵게 한다. 그러나 작가는 묻는다.

“원래 세계는 소통보다 불통이 훨씬 더 많지 않은가요? 불통이 문제는 아니라고 봐요.”

20년간 진행해온 그의 작품 가운데 ‘숲’은 굉장히 중요한 키워드이다. 여러 사진시리즈에서도 항상 숲이 등장하지만 《금단의 숲》은 전시제목 그대로 숲 사진이다.(p.27) 그런데 그의 숲 사진은 일반인의 기대를 배반한다. 숲이 주는 싱그러움, 청량함, 아름다움 대신에 그가 보여주는 숲은 어둡고 칙칙한 녹색, 헝클어진 가지들과 이해할 수 없는 어둑한 세계다. 간혹 보이는 밝은 컬러는 오히려 칙칙한 초록보다 더 불안감과 기괴스러운 감정을 유발한다.

“숲은 자연에서 신과 인간이 조화롭게 공존할 수 있는 교감의 장이며 인간이 지켜야 할 성역이다. 숲은 바라볼 수 있는 곳보다 더 먼 곳에 있다.”

이러한 작가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그의 숲은 일반인의 선입견으로부터 멀다. 사진에서 보이는 것들은 오히려 보이지 않는 곳에 이르게 하려는 장치로 느껴진다. 결국 사진에서 그가 제시한 눈에 보이는 것들은 숲의 저편, 보이지 않는 세계로 이끄는 유도장치인 셈이다.

그런데 그가 유독 숲에 천착하는 더 근원적인 이유는 제주도의 아픈 역사와 무관치 않다. 육지인의 관점에서 보자면 제주도는 오랜 역사 속에서 이상향(파라다이스)이라기보다 멀리 떨어진 유배의 땅이었고, 현대에 이르러서는 4.3항쟁으로 제주도민의 9분의 1 이상이 희생되는 처참한 비극을 당했다. 당시에 제주도를 피로 물들인 이 사건의 흔적은 제주도의 산과 오름, 숲과 들에 남았다. 무자비한 총알을 피해 주민들이 산속으로, 동굴로, 그리고 숲속으로 몸을 숨겼던 절박한 순간들. 작가가 제주도의 산하에서 평화로운 풍경 이면에 있는 피로 얼룩진 시간을 소환해내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는 어릴 적부터 집안의 어른들로부터 전해 들은 그 상처를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양민들이 무차별 학살을 피해 도망치고 몸을 숨겼던 그 숲도 이것을 모두 기억하고 있을 것이라고 그는 믿는다. 그래서 그는 작가노트에 “곶자왈 숲의 기록은 지구의 심부로부터 솟아오른 뜨거운 용암 위에 생성된 특이한 숲과 그 안에 침전, 퇴적되어간 인간들의 역사가 토해내는 숨결에 대한 명상적 기록이다.”라고 적었을 것이다.(p.31)

 


Forbidden forest-37, 2018 ⓒ박형근



Tenseless-71, Flame, 2010 ⓒ박형근



The second paradise-1, 2001 ⓒ박형근



Jejudo-26, 알뜨르, 2014 ⓒ박형근



역사와 예술
그의 사진이 사실성보다 예술성을 추구하기 때문에 간과되는 측면이 있지만 실은 그의 작품에는 역사성이 강하게 표출되어 있다. “두만강” 프로젝트(p.32), “보이지 않는 강과 붉은 풍경”(p.33) “차가운 꿈” 등이 대표적이다. 두만강 프로젝트와 붉은 풍경 등은 남북분단을 무대로 했다. 민간인 출입통제지역으로 한강 하구를 따라 형성된 습지대인 장항습지는 자유로를 달리다 보면 접하게 되는, 도로 하나 사이로 가깝지만 함부로 다가갈 수 없는 지역이다. 존재하지만 비현실적인 공간인 것이다. 어렸을 적부터 들어온 아버지의 노래 “두만강 푸른 물”의 낭만을 기억하며 그가 실제로 접한 두만강 또한 전혀 낭만적이지 않은 역사의 아이러니를 드러낸다. “차가운 꿈”에서 만나는 제주도의 진실도 결코 아름답거나 낭만적이지 않다.

인간의 발길이 끊긴 비무장지대나 민간인 통제구역은 소름이 돋도록 아름답기 마련이다. 방해받지 않은 자연이어서 그렇다. 그러나 그 아름다움의 속내는 편안하지 않다. 우리의 발목을 잡을 지뢰가 똬리를 틀고 있고 어디선가 감시의 눈이 번뜩이고 있다. “아!”라는 감탄사와 신음이 겹쳐지는 공간이다. 차단과 은폐의 기술로 서늘한 그 공간에서 작가는 존재하지만 가상의 나라로 느껴지는 북한이라는 나라, 두만강 너머 이상향을 꿈꾸며 탈주를 시도하는 탈북자를 아프게 바라보고 있다. 결국 두만강은 꿈과 좌절, 삶과 죽음, 이상과 현실을 가르는 경계다. 강을 사이에 두고 비참한 오늘의 현실과 전혀 이상적이지 않은 내일이 교차하고 있음을 확인한 것이다.

박형근 작가가 유학을 마치고 귀국하자마자 시작한 제주도에서의 작업도 역사의 흐름과 맥락을 같이한다. 귀국하자마자 제주도를 다시 촬영하기 시작한 것은 근원을 향한 내면의 소리가 있어서였다.

“제주도에서 나의 실체를 찾고 싶었어요. 역사의 흐름 속에서 상처로 남은 것들을 신파가 아니라 미적 완성도가 높은 작품으로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그에게 제주도는 미적, 감각적 전형이라고 했다. 어렸을 적에 아무것도 모르고 뛰어놀던 숲이 사진가가 되어 돌아온 그에게 원초적인 생명력의 기운과 신화와 전설의 서사, 풍부한 상상력의 근원이 되어 숲 너머의 것들을 들려주고 있다. 숲의 기운이 너무나 강해서 어지러움을 느낄 정도였다는 작가의 고백이 제주도의 숲이 박형근 사진작업의 원천이라는 예측을 가능케 한다.

 


TMRP.Yuejing-2, 2015 ⓒ박형근



Redscape-11, 2010 ⓒ박형근


실재와 연출
박형근 작가의 노트를 보면 순간순간 떠오른 아이디어를 메모하고 스케치한 그림들이 많이 그려져 있다. 불쑥불쑥 떠오르는 아이디어를 적어 놓았다가 틈틈이 그것을 어떻게 시각화할 것인가를 생각하며 밑그림을 그린다. 그 과정이 끝나면 실질적인 작업의 준비를 시작하는데, 이런 습관 덕분에 그는 여러 개의 프로젝트를 동시에 진행할 수 있다고 했다. 지금까지의 왕성한 작업과 결과물은 창의력 이전의 성실함에서부터 비롯됨을 알 수 있다.

그의 사진이 여러 층위를 갖고 있고, 그래서 해석의 여지가 풍부한 것은 실재와 연출이 적절하게 섞여 있기 때문일 것이다. 푸른 이끼가 가득한 습지에 언제부터 있었는지 모를 공, 얼기설기 얽힌 나무 가지 위에 둥그런 달을 연상케 하는 반사판, 붉은 꽃이 뚝뚝 떨어져 있는 숲속의 나뭇가지 위에 걸쳐져 있는 홑이불, 또는 느닷없는 불꽃, 그런 인공적인 소재가 아니더라도 색채의 변형으로 인한 낯선 색감 등은 끊임없이 우리의 인지능력을 교란시키며 다시보기, 다시 생각하기를 권한다. 당장 눈앞의 것에서 눈을 떼면 저 너머 멀리 지금까지 우리가 보려고 한 적이 없는 것까지 볼 수 있다고.

작가는 일찍이 사진에서도 의심, 전복, 재해석이 가능하다고 말해왔다. 그리고 사진이 갖는 ‘우발성’에도 주목해왔다. 작업을 하면 할수록 의도하지 않은 것들이 개입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고 말했다. 스케치를 하고 만반의 준비를 마친 후 촬영에 들어가지만 현장에서 의도치 않은 것들이 개입해서 더 좋은 작업이 완성되기도 한다. 우발성, 사건성을 포착하여 가시화하고 고정시키는 사진의 특성과 작가의 연출력이 만나 사진적이면서 동시에 예술적인 완성도를 획득하는 것까지 나아가는 것이다.

“작가가 갖고 있는 불완전성이 작가의 진실이 아닌가요? 창작을 할 때 작가가 자신의 감각, 직관, 미감을 최대한 발휘하려고 노력하지만 여기에 작가가 불완전한 존재라는 것까지 드러내는 것, 그것이 진정한 작업이라고 생각해요.”

그가 두려워하는 것은 내면에 있는 것을 끌어올려 발현하지 못하고 정해진 답을 따라가는 것, 자신의 정체성이 없는 작업을 하는 것이다. 소통하지 못함을 서둘러 걱정하거나 불완전함을 솔직히 드러내는 것을 꺼리지 않는다. 거기까지가 작가의 모습이라면 진실되게 보여주는 것이 올바르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는 앞으로 “한국의 표면”을 찍고 싶다고 말했다. 그리고 우리의 시각, 우리의 미감으로 세계를 보는 우리의 사진미학이 정립되길 바란다고 했다. 우리의 미학적 관점을 정립하면 좋겠다는 것이다. 또한 작가가 시대와 역사에 책무가 있다면, 자신은 한국의 표면, 가장 한국적인 랜드스케이프를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

 

글 윤세영 편집주간
해당 기사는 2022년 1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