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성원 | 이미지로 듣는 이야기


 
무게를 입은 빛, 2021 ⓒ원성원



보통의 느슨한 관계망, 2021 ⓒ원성원
 


원성원 작가는 타고난 이야기꾼이다. 대화할 때도 그렇지만 그의 작품 역시 풍성한 이야기를 가득 품고 있다. 낱말이 모여 문장을 이루고 문장이 모여 한 편의 소설이 되듯이 그는 한 작품에 2천 개 안팎의 이미지를 조합하여 흥미로운 스토리를 만들어낸다. 어렸을 때부터 상대가 있으면 말을 하고 홀로 있을 때는 그림을 그렸다는 작가의 특성이 가장 잘 발휘되고 있는 셈이다. 1999년에 사진을 이용한 첫 작업인 “My Life” 이후 20여 년간 사진을 베이스로 한 콜라주작업을 선보여온 원성원 작가는 나의 이야기, 내 주변의 이야기, 우리 사회의 구성원들에 관한 이야기를 우화적으로 또는 상징적인 언어로 구성해왔다. 그리고 그녀의 이야기에 흥미를 느끼고 공감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작가의 이야기는 더 탄탄하고 흥미진진해지고 있다. 그러고 보니 어느새 작가도 《1978년 일곱 살》 어린 소녀에서 지천명의 나이에 이르렀다.
 
 

일곱 살의 불안
아침에 늦잠을 자고 눈을 떠보니 집은 고요하고 엄마는 없다. 부엌에 가보고 집 안 구석구석을 살펴봐도 텅 비어 있을 뿐, 갑자기 엄습하는 공포와 불안, 홀로 버려진 느낌. 이 오싹한 경험은 비단 원성원 작가(1972~ )만의 것은 아닐 것이다. 《1978년 일곱 살》은 이러한 배경을 깔고 이야기가 전개된다.(p.30) 이럴 때 일곱 살 아이가 할 수 있는 일은 뭘까? 무작정 대문을 열어젖히고 엄마를 찾아 나서는 것! 그러나 대문 밖 세상은 일곱 살 아이에게 호락호락하지 않다.

원성원 작가가 고단하지만 행복한 아티스트의 길을 택하게 된 내면의 가장 깊숙한 방에는 엄마의 부재를 경험하고 엄마에게서 분리되어 세상으로 나아가야 함을 어렴풋이 깨닫는 일곱 살 아이가 살고 있었다. 그 아이는 틈만 나면 그림을 그렸고 뭔가 만드는 것을 좋아하여 중앙대학교 조소과에서, 그리고 졸업 후에는 독일 유학을 떠나 세계적인 아티스트를 배출한 뒤셀도르프 쿤스트아카데미에서 아티스트의 삶이 무엇인가를 제대로 배우고 익혔다.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너는 젊으니까 앞으로 너의 작품을 발전시켜나갈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어떤 시련이 닥칠지라도, 어떤 비평에도, 주눅 들지 않고 너의 작품을 설명하고 납득시킬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원성원 작가에게 클라우스 링케(Klaus Rinke) 교수는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작업을 주장할 용기와 힘을 훈련시켜준 고마운 스승이었다. 또한 사진을 베이스로 하는 지금의 작업을 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해주었다.

“실은 뒤셀도르프 쿤스트아카데미에 입학하여 처음에 선택한 파트가 설치예술이었어요. 제가 체격은 작아도 스케일이 큰 설치와 대형작업을 좋아하거든요.”

그런데 그게 탈이 났다. 첫 학기 수업에서 욕심을 내어 대형작업을 멋지게 선보여 칭찬을 받았지만 체력이 바닥나 입원하는 일이 벌어졌다. 입원과 통원치료로 수업에 제대로 참여하지 못했다.

“한 학기가 끝나면 이 학생을 계속 데리고 갈 것인지 담당 교수가 결정을 해요. 교수님의 사인을 받지 못하면 다른 교수님이 구제해 주지 않는 한, 학교에 남을 수가 없거든요. 담당 교수님도 일주일간 많이 고민하셨다는데 결국 서명을 해주지 않으셨어요. ‘아무래도 큰 설치예술이 네게는 무리인 것 같다. 말도 잘 못하고 체력도 안 되고 작가를 하기엔 어려워. 빨리 다른 직업을 찾을 기회를 주기 위해 사인을 안 해주겠다’고 말씀하셨어요. 한 마디로 내쫓긴 거죠.”

좌절의 순간이었다. 2m x 4m의 작은 방으로 돌아온 그녀는 짐을 싸기 전에 방에 있는 물건들을 사진으로 남기자는 생각을 했다. 방 한가운데에 백지를 깔고 약봉지, 엄마의 편지, 신던 양말, 먹다만 빵조각 등 방 안의 모든 잡동사니를 하나씩 촬영하니 모두 628장이었다. 그 사진들을 한 눈으로 보고 싶어 이른 아침 아무도 없는 학교에 가서 벽에 사진을 붙여놓고 한참 쳐다보는데 누군가 옆에서 사진을 같이 바라보는 기척이 느껴졌다. 그분이 바로 링케 교수였던 것. 그 사진을 찍게 된 사연을 들은 선생님이 이렇게 제안했다.

“엄청 솔직한 작업이네. 너, 내일 내 수업에 와서 이 작업에 대해 설명할 수 있어?”


 


언론인의 바다 The Sea of Journalists, 2017 ⓒ원성원


금융인의 돌산 The Quarries of Financiers, 2017 ⓒ원성원
 


사진 작업의 시작
1999년 “My Life”라는 작업은 벼랑 끝에서 구사일생으로 희망을 열어준 작품이 되었다.(p.31) 이로부터 사진을 베이스로 하는 디지털 작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고 또한 2002년에 뒤셀도르프 쿤스트아카데미를 졸업하고 쾰른 미디어 예술대학을 선택하는 배경이 되었다.

“1995년부터 2006년까지 11년 동안 독일에 머물면서 작가로서 내 작업의 길을 찾은 셈입니다.”

자신의 공간과 물건을 통해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했던 “My Life”는 주변 사람들의 공간을 각자 원하는 꿈의 공간으로 바꿔주는 “Dreamroom”으로 발전했다. 비록 현실에선 아주 좁은 공간에서 살고 있는 친구들이지만 물을 좋아하는 친구에겐 아쿠아리움을(p.28), 원시시대에 관심 있는 친구에겐 바위가 있는 자연인의 모습으로, 늘 따뜻한 자연을 그리워하는 작가 스스로에겐 원시림이 우거진 방을(p.29) 작품으로 구현한 작업이었다.

독일에서 돌아온 원성원 작가는 2010년에 《1978년 일곱 살》을 전시하면서 본격적으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주변인의 이야기에서 다시 작가 자신의 이야기로 돌아온 것은 자신도 알 수 없는 내면의 불안감, 공황장애 같은 심리적 장애가 커지면서였다. 그녀는 병원에서 치료도 받고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심리분석을 해나가던 중에 아직 불안감이 해소되지 않은 일곱 살 아이가 내면에 웅크리고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p.30)

“어렸을 적에 대가족으로 살았거든요. 그런데 일곱 살 때 엄마가 직장을 다니기 시작하셨어요. 그때부터 나는 영문도 모르는 채 종일 엄마가 돌아오실 때만 기다렸고 혹시 엄마가 돌아오지 않으면 어쩌나 항상 두려워했던 것 같아요.”

이후 원성원 작가의 주제는 다시 주변인, 사회구성원의 이야기로 확장된다. 2017년에 발표한 《타인의 풍경》은 공직자, 언론인, 교수, 금융인 같은 직업군이 작품 제목에 명시되어 이 작품을 통해 작가가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 것인지 명백하게 짚어준다. “금융인의 돌산”(p.27)이란 작품은 메마른 돌산과 헐벗은 나무, 늘어진 전깃줄과 불이 켜진 전등이 어지럽게 널려 있는 풍경이다. 작가는 금융인을 돌을 황금으로 바꿀 수 있는 사람으로 표현한다. 늘어진 전깃줄은 오르락내리락 출렁거리는 주식 그래프를 연상케 하고 밝게 불이 켜진 전등은 돈이 들어오고 있다는 신호로 보인다. 그러나 돌을 황금으로 바꿀 수 있음은 어느 날엔가 황금이 돌로 변할 수도 있다는 아이러니를 내포하고 있다. 이렇게 그의 작품은 상징 코드를 촘촘하게 심어놓아서 그 코드를 조합하고 유추하여 이야기를 읽는 재미를 준다.

그런데 가장 최근작인 2021년 《들리는, 들을 수 없는》에 이르면 이야기의 퍼즐 맞추기가 훨씬 단순해지면서 대신 시각적으로는 완성도가 높은 작품들을 보여준다. 제목부터 “무게를 입은 빛”(p.22)이라든지 “보통의 느슨한 관계망”(p.24), “하얀 가지의 푸른 가능성”처럼 구체성을 띄지 않는다. 따라서 전작에 비해서 서사적인 면은 축소된 반면 단숨에 눈을 사로잡는 시각적인 요소가 압도적이다. 문학적으로 본다면 산문에서 시로 넘어간 느낌이다.



 


Dreamroom-Beikyoung, 2004 ⓒ원성원


Dreamroom-Seoungwon, 2003 ⓒ원성원


일곱살-진달래밥과 들국화국 My Age of Seven-Azalea Boiled Rice and Chrysanthemum Soup, 2010 ⓒ원성원
 


2천 개의 파트로 이루어진 한 점의 작품
“그전에는 한 작품을 완성하는데 1천 개의 이미지를 활용했다면 점점 많아져서 이제는 2천 개를 넘었어요. 그러나 몇 개의 이미지를 썼느냐는 더 이상 세고 싶지 않고 그것이 본질이 아니므로 생각할 필요가 없다고 봐요. 중요한 것은 내가 만들어내는 작품의 완성도입니다.”

원성원 작가의 작품을 들여다보면 세상에 있을 법한 현실적인 풍경이면서 어딘가 낯설고 생경한 느낌을 동시에 안겨준다. 화면을 꽉 채우고 있는 나무와 물, 풀과 들판은 작가가 직접 발품을 팔아서 채집한 이미지여서 사실적이다. 그러나 대상을 촬영할 때 한 컷으로 찍는 게 아니라고 했다. 예를 들어 나무 한 그루를 60컷으로 나누어 촬영하는데 그 이유는 같은 거리와 같은 각도로 보이게 하기 위해서다. 그것을 이어붙이기 때문에 최종적으로는 원근법이라든지 우리가 사물을 보는 육안과 일치하지 않는 묘한 이질감이 생긴다. 말하자면 하늘에 떠서 내려다보고 찍지 않으면 나올 수 없는 장면이 천연덕스럽게 펼쳐지는 식이다.

“사진자료가 갖춰지면 그때부터 컴퓨터 앞에 앉아서 각각의 이미지 조각을 맞춰가며 이야기를 풀어가기 시작해요. 포토샵을 이용하여 붙이고 지우고 색을 조절하는 등의 과정을 통해 이 세상에 있지만 없는 풍경을 창조하는 거죠.”

각각의 조각일 때는 다른 맥락이었지만 작은 조각들이 모여 결합되면서 전혀 다른 이야기로 발전하는 원성원 작가의 작업은 1년에 불과 한 두 작품에 그칠 정도로 제작과정이 길고 힘들다. 한 작품을 만들기 위하여 수만 장의 사진을 찍고 그중에서 수천 장의 사진을 골라서 한 프레임 안에 한 장 한 장 따 붙이는 콜라주작업은 보통 몇 개월에서 몇 년의 시간을 요한다. 먼저, 작품에 대한 구상이 끝나면 드로잉을 통해 최종적으로 어떤 작품이 될지 미리보기를 한다. 그리고 그 작품에 쓰일 이미지를 채집하기 위해 촬영에 나선다. 한 작품에 보통 2천 개의 이미지를 필요로 한다면 얼마나 많은 컷이 필요할까? 게다가 계절 조건과 기상 조건, 그리고 딱 들어맞는 풍경을 만나는 일까지 사진작업의 단계도 어렵고 힘들지만 그다음에 이어지는 디지털 작업은 그 이상이다.

하루에 10시간 작업은 기본이라고 했다. 가끔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라고 스스로에게 묻지만 만약에 자꾸 쉬운 방법을 택하게 되면 작업에 대한 매력을 잃게 될 것 같다고 말한다. 어차피 인생이 고행이라면 작업을 할 때의 수고는 고행이라기보다 명상에 가깝다고 말했다. 삶은 고행이지만 컴퓨터의 세상으로 들어가 무한대로 상상하고 그 상상을 이미지로 창조해내는 작업에는 즐거움이 있기 때문에 행복하다는 것. 처음부터 끝까지 오롯이 혼자서 작업을 진행하고 완성하기 때문에 항상 절대시간이 부족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작가로서 최대한의 시간을 쓰고 일상에서는 최소화, 단순화된 삶의 방식을 유지한다. 즉 남들이 일상에서 누리는 거의 모든 것을 포기하고 작업에만 올인한다는 뜻이다.

“내 삶은 내 마음대로 되지 않지만 내 작품은 내 마음대로 할 수 있잖아요. 컴퓨터 앞에 앉으면 불가능이 없는 세상에서 살고 있는 거예요. 아무리 풍요롭고 여유가 있어도 만약 작가를 안 하고 평범하게 살았다면 오히려 행복하지 못했을 것 같아요.”

 



일곱살-오줌싸개의 빨래 My Age of Seven-Bed-Wetter’s Laundering, 2010 ⓒ원성원


My Life, 1999 ⓒ원성원


My Life, 산타바바라 뮤지엄 전시뷰
 


공간에 대한 욕망
작가의 긴 이야기는 따지고 보면 공간의 이야기에서 출발했다. 사진 콜라주작업의 출발점이 된 “My Life”는 3평이 안 되는 작은 방에서 그녀의 일상을 구성했던 사소한 물건들을 꺼내 보인 작업이었고 그 후 친구들의 공간인 “Dreamroom”에 착안한 것도, 그 이후 광대한 스케일의 공간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작업도 작가가 공간에 집착하고 욕망한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원래 크고 광활한 것을 좋아해요. 현실적으론 제약이 있지만 카메라를 이용해 웅장한 것들을 데리고 와서 방대한 세계를 창조함으로써 내 머릿속에 있는 광활함을 사람들에게 전달하고 싶은 거죠.”

매일 모니터 속으로 들어가니까 현실에서의 내 방이 작게 느껴지지 않는다고 말하는 원성원 작가. 처음엔 하얀 공백으로 시작하지만 그 안에 차곡차곡 사물이 들어오면서 시간이 가면 산과 바다, 숲과 강이 나타나고 작가는 파라다이스 같은 그 풍경 속에서 자유와 행복을 만끽한다. 그 행복함이 맛깔스러운 이야기로 전개되니 덩달아 듣는 귀와 보는 눈이 또한 즐겁다.

 

글 윤세영 편집주간
해당 기사는 2022년 2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