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수 | 구름과 별 사막과 나무


나의 구름, 1996 ⓒ김광수


그의 사진은 사탕처럼 달콤하고 구름처럼 자유롭고 별처럼 신비롭다. 1980년에 사진과를 졸업하고 40년 이상을 사진가로 살아왔지만 여전히 유년의 달콤한 기억과 소년의 호기심, 청년의 열정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김광수 작가. 그의 사진이 ‘행복 바이러스’를 뿜어내는 것은 영원히 늙지 않는 ‘어린왕자’의 심성을 갖고 있어서인지 모른다. 그는 어릴 적 할머니가 한 움큼씩 주머니에 넣어주던 알록달록한 사탕을 못 잊어 지금도 대를 이어 운영하는 한 과자가게의 40년 단골이다. 구름을 찍으러 적도의 아프리카 사막으로 달려갔다가 구름은 못 잡고 쏟아지는 별을 품고 돌아오기도 했다. 또, 자신의 작품에 등장한 진달래나무와 안녕의 눈짓을 나누기 위해 날마다 우면산에 오른다. 그에게 사진은 그가 사랑하는 것들과 행복하게 교감을 나눈 흔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의 구름, 1993 Ⓒ김광수




나의 구름, 2001 Ⓒ김광수



할머니의 다락방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에 등장하는 마들렌처럼 김광수 작가의 유년의 추억은 할머니가 다락에서 꺼내주시던 알록달록한 사탕과 젤리에 닿아 있고, 그 달콤한 추억은 그의 정물작업과 “사과나무”, 그리고 “별”시리즈로 이어진다. 한 작가의 의식의 근원을 아는 것은 흥미롭고, 더구나 그 의식이 작품으로 발현되어가는 경로를 보는 것은 경이롭다. 구름으로 시작하여 별에 이른 지금까지의 그의 작업을 살펴보면, 그 안에 작가의 근원적인 스토리가 담겨 있다.

전북 남원에서 태어난 김광수 작가(1957~ )가 서울로 유학 온 고등학교는 차범근, 박항서 등을 배출한 축구명문이었는데 그에 못지않게 미술반도 꽤 유명했다. 친구 따라 미술반을 자주 들락거리던 그는 쓱쓱 스케치로 사물을 감쪽같이 옮기는 친구의 그림솜씨에 반해버렸다. 그러나 친구를 따라서 그림을 그리기엔 너무 늦었다는 생각에 궁리한 차선책이 사진이었다. 마침 남원의 집에 아버지의 카메라가 있었다. 그렇게 시작한 사진이 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쓰고 사진과로 진학하는 계기가 되었다. 패션사진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졸업하자마자 스튜디오에서 일을 배우기 시작했고, 1988년부터 16년 동안은 자신이 직접 광고사진스튜디오를 운영했다. 그러나 꿈이 많은 몽상가에게 맞지 않는 옷이었는지 2004년에 스튜디오의 문을 닫게 되면서 기다렸다는 듯이 전업 작가로 돌아왔다.

“광고사진가가 순수사진가로 전환하기가 의외로 어려운 것 같아요. 그런데 저는 처음부터 순수사진으로 출발했고, 스튜디오를 하면서도 계속해서 구름 작업을 하면서 전시를 여러 번 했던 덕분에 자연스럽게 넘어온 것 같아요. 순수사진을 하게 된 이후 너무 행복했어요.”

그는 대학졸업을 앞두고 1979년 명동 유네스코화랑에서 “벽”이란 개인전을 열면서 일찌감치 작가의 길을 예고했다. 스튜디오를 운영하면서도 96년에 서화갤러리에서 《구름Ⅰ》(p.26, 28)전을 시작으로 2년에 한 번씩 구름시리즈나 포트레이트 작업을 전시함으로써 사진가 김광수의 자리를 확보했다. 또한 그림 그리는 친구들만이 아니라 음악, 디자인 등 문화예술 분야의 다양한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예술적 감성과 철학을 차곡차곡 채워간 것이 그가 2004년을 실패의 시간이 아니라 작가로서 중요한 전환점의 시기로 삼을 수 있었던 바탕이 되었다. 사업에 실패하고 막막한 상황이 오히려 그에게는 거추장스러움을 벗어던진 자유를 가져다주었고 그의 평생작업으로 점찍은 ‘구름’처럼 마음대로 꿈을 꿀 자유를 준 것이다.


구름이 흘러가는 곳
2004년 금호미술관에서 본격적으로 선보인 《나의 구름》(p.29)은 사진가 김광수와 구름사진을 등가로 놓는 확실한 전시가 되었다. 어느새 구름은 그의 독점물이 되었다.

“첫 전시를 《벽》으로 한 이후 계속 벽 사진을 찍었는데 어느 날 벽 위로 올라온 구름을 보았어요. 그때 문득 이런 생각이 떠올랐어요. 왜 나는 땅만 보고 하늘을 보지 못했지?”

초창기 구름사진에는 자동차나 가로등 같은 지상의 오브제를 넣었는데 7, 8년이 지나면서 작업의 방향이 바뀌었다. 순수하게 자연의 구름을 찍기 위해 거대한 지평선이 있는 땅을 찾다가 내몽고로 향했다. 거대한 스케일을 보고 싶다는 욕망이었는데 이 ‘지평선 시리즈’는 5년간 지속되었다. 그러나 차츰 더 본질적인 곳, 더 넓은 미지의 세계를 보고 싶었다. 드디어 2007년, 모처럼만에 손에 쥔 목돈을 들고 그는 아프리카로 튀었다.

“아내의 입장에서 본다면 튀었다는 게 올바른 표현입니다. 스튜디오 문을 닫고 어려운 형편이었는데 운 좋게 전시로 돈이 생기자 아프리카로 내뺐으니까요.”

그곳은 적도의 땅, 케냐에 있는 투르카나(Turkana) 사막이었다. 지평선이 멋지게 펼쳐지는 사막에서 구름을 보기 위해 40일간의 일정으로 부푼 희망을 갖고 케냐의 나이로비 공항에 도착했다. 몽땅 흑백필름을 준비하면서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컬러필름 10롤을 챙겼다. 그렇게 남이 못 보던 새로운 곳을 찾아 떠났지만 상상했던 구름을 만나지 못했다. 메마른 사막이라서 좀처럼 구름이 만들어지지 않았던 것. 걱정과 실망으로 잠이 오지 않았다. 그곳을 떠나기 일주일 전, 잠은 오지 않고 숙소 밖으로 나가 밤하늘을 올려다본 그는 탄성을 질렀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문자 그대로 칠흑 같은 밤하늘에 찬란하게 빛나는 별들이라니! 그는 준비해간 컬러필름으로 별을 찍었다. 대낮에 구름에만 집중하느라 미처 밤하늘에 무심했던 것이다.

“그래도 별 기대를 갖지는 않았어요. 한 달이나 지나서 현상을 맡겼을 정도니까요. 그런데 뷰박스로 현상된 필름을 본 순간 눈을 뗄 수가 없었어요. 하늘에 알록달록한 캔디가 무수히 뿌려진 느낌이었어요.”

구름이 흘러가는 곳을 따라가다가 별을 주운 셈이다. 그로부터 2년 뒤인 2009년에는 별을 찍기 위해 두 달 일정으로 다시 아프리카로 떠났다. 나이로비 공항에서 내려 차를 타고 투르카나 사막으로 이동하면서 루시라는 마을로 들어섰을 때 그 감동을 잊을 수 없다고 말한다.

“언덕을 넘어가는데 눈 아래 나타난 마을이 지구와 다른 우주 공간인 줄 알았어요. 마을의 집집마다 대문에 칠한 색깔이 빨강 초록 파랑 노랑, 그곳 밤하늘의 별과 똑같은 색이었어요. 사실 별들이 그렇게 사탕처럼 예쁜 갖가지 색깔인 줄을 아프리카에서 처음 알았거든요.”

별의 궤적을 찍은 사진들은 수없이 흔하다. 그러나 적도 하늘의 별은 달랐다. 빛이라곤 전혀 없는 깜깜한 밤하늘을 배경으로 별의 궤적이 동그라미를 그리는 게 아니라 직선으로 흐르면서 이제껏 보지 못한 신비로운 별 사진을 보여준다.(p.31) 그 순간 작가가 얼마나 벅찬 감동으로 밤하늘을 올려다보았을지, 마치 사막에 불시착한 어린왕자처럼 부푼 호기심과 상상력으로 별빛의 흐름을 따라갔을지 그림이 그려진다.

 



투르카나의 마을, 2009 ⓒ김광수


투르카나의 호수와 별, 2009 Ⓒ김광수



색의 판타지
2021년 11월, 스페이스22에서는 《김광수. 나의 구름》, 무늬와 공간 갤러리에서는 《설탕유희》가 전시되고 있다. 《설탕유희》는 11월 16일부터 내년 2월 15일까지 세 달간 진행되는데, 이 전시작들은 김광수 작가의 색에 대한 애착과 판타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김광수 작가도 오랫동안 ‘작품은 흑백으로’라는 관념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를 가르친 스승도, 그가 섭렵한 명작도 대부분 흑백사진이었기 때문에 당연하게 스며든 고정관념이었다. 그러나 패션과 광고사진을 하면서 다져진 감각과 그에게 내재되어있던 컬러에 대한 판타지가 그를 흔들어 깨웠다.

“교과서처럼 여겼던 흑백사진에 대한 충성심이 흔들리고 컬러에 흠뻑 빠지면서 그동안 흑백의 눈으로 바라보았던 사물에 대해 미안했어요.”

2000년대 이후 그는 환상적의 색의 유희를 유감없이 펼쳤고 그 오브제가 무엇이든 컬러로 해석해버리는 컬러홀릭이 되었다. 처음엔 자신의 광고사진스튜디오에서 다양한 조명기구를 이용하여 심심파적으로 찍은 꽃 사진이 점차 색깔이 화려한 과일 사진으로 바뀌었고 이어서 사탕과 젤리, 장난감같이 유년의 추억을 자극하는 원색의 매력에 푹 빠졌다.(p.35)

“어렸을 때 할머니랑 남원장에 가면 주머니가 불룩하도록 사탕을 사주시던 할머니에 대한 추억이 있어 서울로 온 뒤에도 장에 가는 걸 좋아했어요. 시장에 가면 새로움과 풍성함, 그리고 여러 색깔이 보이잖아요.”

그중에서도 빨강에 꽂혔는데 그것이 결국 작가를 ‘사과나무’시리즈로 이끌었다. 빨간 하이힐 구두, 빨간 피망 등 빨강을 탐색하던 그는 빨간 사과를 찍기 위해 과일가게를 들락거렸다. 그래도 마음에 쏙 드는 싱싱한 사과를 만나기 힘드니까 아예 사과밭으로 찾아갔다. 새벽에 금방 딴 싱싱한 사과, 잎이 달린 사과를 구해 사진을 찍었다. 사과밭을 몇 번 다니다 보니 이번엔 사과나무가 눈에 들어왔다. “아니, 왜 이 예쁜 사과나무를 놔두고 사과만 찍으려고 했지?”

빨강이 있는 나무는 섹시했다. 사과나무만이 아니라 감나무도 그렇고 진달래도 그랬다. 그가 나무를 찍는다고 하자 주변 사람들이 “사진에 담기 딱 좋은 멋진 나무가 있다”는 소개를 하지만 가보면 번번이 허탕이다. 고개를 가로젓는 그를 의아해하는 사람들에게 그가 하는 대답은 “섹시하지 않잖아.” 연애를 할 때처럼 첫눈에 반하지 않고는 작업이 시작될 수 없다. 1년 동안 애를 태우며 기다려야 하는 수고로운 작업을 푹 빠지지 않고서야 시작할 수 없지 않겠는가.

전국의 사과과수원을 뒤져서 촬영조건에 맞고 가슴이 설레도록 섹시한(?) 사과나무를 만나면 주인과 1년 임대계약을 맺는다. 주인은 그 사과나무 한 그루에서 나오는 소득을 계산하여 빌려주는 대신에 그 나무가 잘 자라도록 돌봐준다. 물론 김광수 작가도 수시로 전화하여 사과나무의 안부를 묻고 가끔은 찾아가 살펴본다. 그리고 마침내 사과가 풍성하게 열린 가을날, 촬영을 위한 준비를 시작한다. 나무의 주변을 정리하고 나무 아래에 모래를 부어 바닥을 단순화시킨다. 실제와 추상을 묘하게 중첩시키려는 의도다.(p.33)

 


이브의 사과, 2018 Ⓒ김광수



플라잉, 2020 Ⓒ김광수



태초의 땅, 태초의 나무
투르카나의 ‘별’이 구름을 따라간 뒤끝이었다면 그의 ‘사과나무’는 색감을 따라가다 만난, 작가로선 전환점이 된 대작이었다. 2008년 무렵으로 처음 아프리카에 가서 사막의 별 작업을 하고 온 다음해여서 다시 별을 보러 가고픈 바람으로 잔뜩 부풀어 있을 즈음이었다.

“처음엔 몰랐는데 사과나무 아래에 모래를 깔다보니 문득 아프리카의 사막이 떠올랐어요. 그 기억이 나도 모르게 모래를 깔도록 했음을 깨닫고 아, 모든 작업은 그렇게 서로 연결이 되는 것이로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엄연히 과수원에 실제로 존재하는 사과나무지만 모래를 깔고 주변을 정리하자 현장성이 없어지면서 비현실적이고 추상적인 느낌이 생겨났다. 가지가 휘어지도록 주렁주렁 열매를 매달고 있는 사과나무가 진짜 현실 속의 나무인가 하는 의심과 함께 사과나무가 갖고 있는 다양한 함의를 상상케 하는 이 사진은 ‘구름’에 이은 김광수 작가의 대표작이 되었다.

창세기에 따른다면 사과나무는 우리 인류에겐 최초의 나무, 즉 태초의 나무다. 아담과 이브를 낙원에서 인간의 세상으로 나오게 한, 아이가 어머니의 자궁에서 바깥세상으로 나오듯이 근심걱정 없는 낙원에서 인간세상으로 나오는 문을 열게 한 상징성을 갖는 나무다. 작가가 태초의 나무를 찍겠다고 처음부터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지금까지의 여러 작업을 살펴보면 김광수 작가는 결국 태초의 것을 지향하는, 즉 본질을 찾는 작업을 해왔음을 알 수 있다. 그가 구름을 좋아하고 별을 사랑하고 거대한 원초적인 땅을 찾아다닌 일련의 발걸음은 조금 더 본질적인 것에 다다르고자 하는 끌림이었고 태초의 것을 찾아가는 순례였던 셈이다.

1979년 첫 개인전 《벽》 이후 40년 이상이 흘렀다. 내성적이지만 열정이 컸던 소년은 건강문제로 움츠러들었던 청년시절에 골목길 ‘벽’을 찍으며 폐쇄된 공간에 갇힌 것 같은 아픔을 표현했다. 그러나 곧 벽을 넘어 구름을, 하늘을 보았고 끝없이 펼쳐지는 지평선으로 나아갔다. 48세에 맞닥뜨린 사업에서의 부도가 시기적으로 아주 적당했다고 내심 반긴(?) 이유도 자유로운 세계, 좀 더 근원적이고 본질적인 세계로 내달리고 싶은 내면의 오랜 열망 때문이었다. 그 열망은 투르카나의 별에 이르게 했고, 앞으로 얼마나 더 확장되어 나갈지 아직 작가가 보여주지 않은 미지의 세계에 기대를 걸게 한다.

김광수 작가의 작품세계는 순수성, 순진성에서 출발한다. 생 떽쥐베리의 “어린왕자”가 동화 같지만 촌철살인의 화두를 던지듯 김광수의 사진도 순진성에 기반을 두지만 단순한 아름다움을 넘어서는 꿈과 환상, 자유와 행복을 품고 있다. 나이에 맞춰 더 잘 보이는 것들이 있어 사진하는 행복이 자꾸 더 커져간다며 다음 작업에 대한 설렘을 감추지 못하는 작가 김광수. 자신이 발견한 것들의 가장 절정의 아름다움을 추출하여 보여줄 수 있다는 점에서 신이 나고 즐거운 이 사진가는 무지개를 따라 산을 넘고 강을 건너 결국은 무지개를 가슴에 담아오는 순수한 열정으로 우리에게 기쁨을 준다.

 

글 윤세영 편집주간
해당 기사는 2021년 12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