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4개의 아픈 손가락, 조소희 〈봉선화기도 304〉

봉산화기도 304 설치전경, 2016 세월호 희생자 추념전 〈사월의 동행〉
 

‘목까지 차오르는 산소가 부족해 숨이 가빠오는 어린 물고기 마냥 칠흙 같이 공포스러운 배 속, 비명마저 말라 조그만 공간을 맴돌았을 엄마, 엄마하고 부르는 기도// 얼마나 무서웠을까? 얼마나 괴로웠을까?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 순간의 너희들의 고통을 모두 씻어주고 싶다. 나의 간절한 기도// 난 그날 보았던 것들을 똑똑히 기억하는데, 모두들 없었던 것처럼 입을 다문다. 마음이 무겁다. 무거운 기도.//가장 무서운 적은 망각입니다. 잊지 않으리란 약속, 굳센 기도’ - 조소희, 〈봉선화기도 304〉 304인의 기도문 中


“왜 자꾸 잊으라고 강요하는지 모르겠어요. 잊고 싶으면 혼자 잊으면 되지. 기억하려는 사람들에게도 왜 자꾸 잊으라고 강요하는지.”

4월은 잔인한 달이라지만, 세월호 참사가 있었기에 한국인들에게는 더욱 잔인한 달로 기억된다. 2014년 4월 16일 일어났던 세월호 참사는 올해로 3년째를 맞았고, 3년이 자니서야 인양돼서 드디어 뭍에 닿았고 미수습자 수색이 한창 진행 중이다. 세월호 생존자 중 한 명인 장애진씨는 지난 4월 TV 방송에 출연해 “잊으라고 강요하는 사람들”에 대한 답답함을 토로했다.

박근혜 정권 하에서 세월호는 일종의 정치적 표상으로 이용되면서, 그에 대한 추모나 안타까움 마저 일방적으로 묵살당하고, 조롱당하며, 그만 잊어버리기를 강요받았다. 추모와 애도에 유통기한이 있음이 아닌데도, 또 여전히 아파하는 사람들이 있는데도, 트라우마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눈을 돌리고 빨리 잊기만을 강요하는 시대.

조소희의 〈봉선화기도 304〉는 그 망각에 대한 저항이자, 기다림의 기도이다. 〈봉선화기도 304〉는 처음 작가의 개인적 작업에서 출발했는데, 그는 자신의 손가락 전체에 봉선화 물을 들이고 기도하는 손의 모습을 사진으로 담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나고, 이후 지난 2016년 경기도 미술관에서 열린 세월호 희생자 추념전 〈사월의 동행〉에서 304명의 참여자를 모집해 그들의 손가락을 봉선화물로 물들이고 촬영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참여자들은 사진 촬영과 함께, 마음을 담은 짤막한 기도문도 남겼다.

이 304명의 손 사진들과 참가자들이 남긴 기도문들은 지난 4월 컬처북스에서 「봉선화기도 304-세월호의 아픔을 함께하는 304인의 기도-」라는 책으로 묶어져 나왔고, 또한 갤러리 산지에서 지난 4월 13일부터 오는 5월 12일까지 동명의 전시도 함께 열리고 있다.

 
ⓒ조소희

마치 핏물로 물든 듯 붉은 손가락과 마주하고 있는 두 손, 이 손들이 쭉 나열돼 전시된 전경을 보면 그 묵직한 슬픔과 간절함에 일순간 압도당하고 만다. 조소희는 “이 작업을 하면서 사람의 손마다 그렇게 다양한 표정과 삶이 있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됐다”며 “34개월 어린아이부터 96세의 할머니까지 다양한 세대의 사람들이 저마다의 간절함을 담아 이 프로젝트에 참여했다”고 설명했다.

흔히 ‘열 손가락 깨물어 안아픈 손가락 없다’는 말로 자식에 대한 사랑을 비유하곤 한다. 조소희가 찍은 기도하는 손들을 보면, 그 손가락들 중 가장 아파보이는 가운데 손가락이 피로 벌겋게 물들어 보는 이의 가슴까지 시큰거리게 한다. 다섯 손가락 중 가운데 손가락에만 붉은 봉선화 물을 들인 것은 세월호 참사를 둘러싼 무책임하고, 비정한 이 사회에 대한 분노이자, 또한 간절한 바램의 의미를 담고 있다. 작가는 “가운데 손가락은 원래 심장과 가장 가깝게 통하는 손가락으로, 봉선화 꽃물이 들어 마치 심장에서 피가 솟아 적신 듯도 보인다”며 “아픔이고 사랑이고 잊지 말자는 다짐이기도 하다”고 전했다.

손 마다 각자 표정이 있다는 작가의 말처럼, 여리고 가냘픈 손도, 억세고 굳은 살이 박힌 손도, 고사리 새순 같이 작은 손도 다양하지만, 때로는 깍지 끼고, 때로는 간절히 모은 두 손에서는 저마다 무언(無言)의 기도가 읽혀진다. 특히 전시장 복판에 크게 걸린 한 할머니의 메마르고 주름진 손과 봉선화 물이 든 가운데 손가락은, 마치 늙은 고목에서 돋아난 붉은 꽃 같아 유독 시선을 사로잡는다.

“96세 할머니의 손이에요. 이 프로젝트에 참여하기 위해서, 걷기도 힘드신 분이 2층인 제 작업실까지 지팡이를 짚고 후들거리면서 올라오셨어요. 96세시면 한 100년, 한 세기를 살아오신 분이잖아요. 이런 분이 손을 모아 기도해준다면 꼭 이뤄지지 않을까, 힘이 되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해요. 제 작업실 벽에도 이 사진을 걸어놓았는데, 볼 때마다 힘을 받는 것 같아요. 이 사진들을 보는 분들도 제가 이 분의 손에서 받은 믿음, 힘, 위로를 함께 느꼈으면 좋겠어요.”

 

글 석현혜 기자 사진제공 조소희 
해당 기사는 2017년 5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