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순택, 항구적 비상사태에서 살아남는 법 〈비상국가Ⅱ - 제 4의 벽〉

노순택의 개인전 〈비상국가Ⅱ - 제 4의 벽〉이 지난 6월 2일부터 8월 6일까지 아트선재센터에서 열리고 있다. 그의 사진에서는 충돌과 전력투구의 에너지가 사진 너머까지 직접적으로 전해져 온다. 그의 전시작에서는 용산참사, 천안함 침몰, 연평도 포격, 강정해군기지 강행, 세월호 참사, 노동자들의 고공농성, 박근혜 탄핵 국면 등 지난 10년 간 한국 현대사의 중요한 대목들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그 사진들은 하나같이 우리 사회가 밟아온 고통과 모순의 지도들을 선연하게 그려내고 있다.  

사진 속 인물들은 절규하거나 부딪치거나 혹은 간절하게 무언가를 희구하고 있다. 그 한 편에서는 무표정하게 무리지은 국가의 합법적 폭력이 자리한다. 무심한 듯한 폭력의 잔해, 무기질의 카메라와 진압장비 등이 격렬하게 이에 맞서는 인물들의 모습과 대조를 이루며 오히려 그 차분함이 그로테스크하게 느껴질 정도이다. 〈가뭄〉이란 역설적 제목이 붙은 시리즈는 하늘에서 흩날리는 물줄기들을 찍었는데 얼핏 보면 추상회화 같기도 하다. 그러나 그것이 세월호 유가족들에게, 농민 백남기에게 겨누던 물대포라는 현실을 깨닫는 순간, 그 추상적인 물줄기는 시각적인 폭력이 된다. 캡사이신 등 화학 물질을 최대치로 넣었기에 본래는 투명했어야 할 물줄기가 흰 색으로 선명하게 사진 속에 드러나는 점도 맥락을 알고 보면 공포이다. 사진 속에는 시각적 아름다움으로 남은 그 물줄기가, 실제 사람들을 겨눴고 사람을 죽였다. 그리고 그 물줄기를 찍은 한 장의 사진이 전시장 벽에 걸렸다. 사진은  과연 무엇을 기록하고 보여주며, 이 사진을 전시장에서 마주치는 관객들에게 어떤 형태로 작동하는가?

노순택의 이번 전시는 지난 2008년 독일에서 열린 그의 개인전 〈비상국가Ⅰ〉에 이어 딱 9년 만이다. 〈비상국가Ⅰ〉이 분단 상황에서 발생하는 모순과 북한을 둘러싼 다층적 시선, 대추리 미군기지 등에 초점을 맞췄다면, 이번 전시는 지난 10년 동안 한국사회에서 오작동되는 국가의 폭력을 읽어냈다. 그는 ‘국가의 표면에서 우리가 본 것은 무엇인지, 분단체제는 어떻게 (오)작동되는가’를 묻는다. 그런 그에게 ‘비상사태’라는 상황을 상정하며 국가의 권력을 합법화 하는 이 허술하고 오작동 되는 연극 같은 현실 속에서 사진을 찍는다는 것, 살아남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지를 물었다.

 


아트선재 전시장 내부


노순택, 〈현기증〉, 2015, 부산 연산동
생탁 노동자 심정보 택시 노동자 송복남, 복직과 노조활동 보장을 요구하며 부산시청 앞 광고탑에 올라 253일 고공농성


 노순택, 〈거짓으로 쌓아올린 산〉, 2017 서울 광화문광장
새벽녘 누군가 칼로 그어 훼손한 재벌비판 현수막. 해고노동자들은 삼성 이재용 부회장의 목을 실로 꿰맸다. 이재용은 2월 17일 결국 구속되었다.


〈비상국가Ⅱ - 제 4의 벽〉은 지난 9년의 한국사를 관통하며, 이를 시대순이 아니라 장소별로 나눈 점이 인상적이다. 전시 전체를 크게 섬과 뭍의 장면으로 분류해 보여준다. 섬과 뭍은 지리적 장소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상징적 장소이다. 전시 전체를 섬과 뭍으로 크게 나눈 이유가 있는가? 육지 속의 섬처럼 고립돼 있는 상황을 통해 무엇을 전하고 싶었는가?

한반도는 지리적 관점에서 본다면 대륙과 이어진 반도이지만 정치적 관점에서 본다면 섬과 같은 역사를 겪었다. 고립적인 노선을 걸어 온 북한은 말할 나위 없고, 남한 역시 북한과 대결관계를 유지하며 지리적으로도 섬이나 다를 바 없는 시기를 보내왔다. 남한을 둘러싼 4면의 바다 가운데, 북한이라는 바다야말로 가장 어둡고 깊으며 파악하기 어려운 바다다. 지난 70여년, 북한이라는 바다가 남한이라는 섬의 성격을 규정해 왔다. 이것이 내가 품고 있는 섬에 관한 첫 번째 이미지다.

남한의 정치경제사회 시스템은 분단체제로 인해 왜곡을 거듭했다. 모든 가치 위에 반공과 안보가 놓였다. 그것은 남한이라는 큰 섬 안에 무수한 작은 섬을 만드는 일이기도 했다. 뭍을 위해, 혹은 뭍에 의해 섬은 희생되어 왔다. 이번 전시작 중 가장 오래된 작업인 매향리 농섬에 관한 작업 ‘고장난 섬’으로부터, 백령도에서 작업했던 ‘가면의 천안함’, 연평도 포격사건을 다룬 ‘잃어버린 보온병을 찾아서’, 4.3학살의 기억을 품은 채 해군기지 강행에 맞서야 했던 제주 강정마을의 이야기 ‘강정강점’ 모두 섬에 관한 이야기다. 남한이라는 큰 섬 속의 작은 섬들, 이것이 내가 품은 섬에 관한 두 번째 이미지다.

세 번째 이미지는 은유적인 고립의 섬이다. 분단체제에 기생하는 왜곡된 국가와 자본에 의해 차가운 길바닥으로, 목숨 건 고공으로 내몰린 섬들. 용산참사가 벌어진 남일당 빌딩 위의 망루는 섬이었다. 세월호 유가족이 3년이 넘도록 싸우고 있는 광화문 천막은 섬이 아닌가. 지난 15년 동안 100건이 넘게 이어진 해고노동자들의 고공농성은 물리적으로도 심리적으로도 섬일 수밖에 없다.

누가 이런 섬을 만들어 왔는가. 누가 섬을 통해 이득을 취해 왔는가. 누가 섬에서 죽었는가. 이런 생각들로 이번 전시의 흐름을 만들었다. 섬에서 섬으로, 섬에서 뭍으로, 허나 뭍에도 섬이 있다는 몸과 생각의 흐름.


〈채집〉 시리즈를 보면, 시위대에 숨은 경찰 측이 채증을 위해 사진을 찍는 등 사진 자체가 거대한 감시의 기구로 활용되는 모습도 담아냈다. 이것은 지금 시대 사진이란 미디어에 대한 사진작가로서의 의문이기도 한 것인가?

물론이다. 나는 내가 손에 쥔 도구에 대한 궁금함을 이어왔다. 사진은 어렵지 않지만, 쉽지만은 않은 매체다. 사진을 찍는 기이한 풍경들을 담은 작업은 나 자신에 대한 비웃음을 포함한다.

 


노순택, 〈거짓으로 쌓아올린 산〉, 2016
2016 Seoul 서울 광화문광장, 박근혜 퇴진 제6차 범국민 촛불행동의 날,

노순택, 〈비상국가〉, 2016 서울 옛 국가인권위 앞 도로, 비정규직 정규직화를 촉구하며 광고탑 고공농성을 벌였던
기아자동차 노동자 최정명 한규협씨가 363일만에 내려와 경찰에 연행되고 있다.


‘사진가로서, 시각예술가로. 활동가 이자 저항 주체로서’ 항상 현장에 카메라를 들고 선 사진작가로 기억된다. 평택 대추리 미군기지를 촬영할 때는 아예 그 곳에 이주하기도 했고, 용산 참사, 밀양 송전탑 건설, 제주 강정마을 등 사진 속 현장은 작가의 전장이기도 했다. 지난 겨울에는 예술인들을 검열했던 박근혜 정권의 ‘블랙리스트’에 항의하며 석 달간 천막을 치고 노숙 투쟁했다. 사진을 찍을 때 현장에 오래 있기에 더 잘 보이고, 천착할 수밖에 없는 부분이 있다면 무엇인가?

현장에 오래 머물다 보면, 예측 가능한 것들이 있다. 그러나 현장에서 펼쳐지는 장면들은 언제나 예측을 벗어난다. 그것이 현장의 매력이다. 물론 사회적 갈등, 뉴스의 현장만이 ‘현장’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 삶이 버티고 선 곳, 우리의 발길이 찾아가는 숱한 곳들이 현장 아닌가. 어떤 극적인 현장일지라도 스스로 눈을 뜨려고 애쓰지 않는다면 어떤 장면들은 보이지 않을 것이다. 시각이란 언제나 의지의 산물이다.


이번 전시의 큐레이터인 한스 D.크리스트는 당신의 사진이 가진 ‘어떤 유머의 지점’이 여타의 사진들과 차별화된다고 말한다. 이를테면 ‘물대포 속에서의 로맨스’ 같은 모습이라거나, ‘시위 뒤의 점심식사’ 같은 사진 등 말이다. 이런 ‘유머’ 혹은 ‘일탈’의 지점이, 우리가 대학 대자보에서 많이 보던 시위사진이나 혹은 신문의 보도 사진과 차별화 되는 지점이다. 이런 ‘장면’, ‘시각’의 차별화를 스스로 의식하면서 촬영하는가?

나는 인간사의 갈등과 폭력이 ‘진지함’으로 점철되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많은 경우 폭력은 울 수만도, 웃을 수만도 없는 아이러니를 동반한다. 북한의 연평도 포격으로 4명이 목숨을 잃었다. 남한의 안보당국자들은 이미 수차례 이어진 북한의 경고와 움직임을 알고 있었다. 주권자의 생명권에 눈감은 옹졸한 자존심 대결, 미숙한 상황판단이 그 사태의 한 원인임을 부인할 수 없다. 모순되게도 그 사태는 남북의 안보괴물들에겐 호재였다. ‘적대적 공존관계’는 어김없이 발휘되었다. 황진하 등의 군사전문가를 이끌고 연평도 포격현장을 찾은 안상수 한나라당 대표의 ‘보온병 발언 해프닝’을 기억하는가. 나는 안상수의 실언보다 그 옆에서 포탄의 규격을 부연설명한 3성 장군 출신 황진하를 더 주목한다. 군사전문가로써 국회의원이 됐던 그는 훗날 국회 국방위원회 위원장을 맡기까지 한다. 그런 엉터리 안보전문가들이 내리는 결정들로 인해 얼마나 많은 이들이 목숨을 잃었는가. 나는 “분단은 오작동으로써 작동한다”고 말해왔다. 오작동에 관한 주목 자체가 기이한 웃음, 블랙 유머를 더 보게 한다.
분단체제가 이미 부조화의 산물이고, 일탈일진대 그것에 대해 말하는 작업이 조화와 정주를 좇기가 더 어려울지 모르겠다. 나 자신, 작업이라는 미명아래 이런 체제에 기생하는 자가 아닌지 생각하곤 한다. 나는 비웃음을 자주 사용하지만, 냉소가 늘 냉수(冷水)일 수는 없다는 사실을 잊지 않으려고 한다.   


현장에서 보도사진기자들과 자주 마주치거나 그들과 동선이 겹치기도 할 것 같다. 그들 역시 때론 사진 속 피사체로 등장하기도 한다. 보도사진기자들과 사진 촬영 할 때 같은 부분과 다른 부분이 있다면? 아무래도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포인트나 시점이 다를 수밖에 없을 것 같은데?

저널리즘은 면적의 한계를 갖는다. 특정한 날, 특정한 지면(혹은 화면)에 사용할 수 있는(요청되는) 사진이란 양적인 측면에서나 질적인 측면에서 한정적일 수밖에 없다. 대신 개인이 가질 수 없는 파급력을 가진다.
오늘날 저널리즘의 문법은 더 자유롭고 다양해졌을지 모르지만, 문법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그 문법이란 저널리즘이 오랜 시간 부침을 거듭하며 구축해 온 것이므로 중요하고 효과적이다. 한 때 저널리즘에 종사했던 경험은 그 문법의 매력에 대해 생각하게 했다.

전적으로 저널리즘과 차별되는 시각을 추구하는 게 아니라, 저널리즘과 살짝 어긋나는 시각을 추구한다. 저널리즘이 ‘정점’을 주목할 때, 정점의 전과 후, 곁가지를 한 번 더 보는 식이다.


지난 10년이 당신에게는 어떤 시간이었는가? 또 탄핵 당시, 광장에서 지내던 지난 겨울과 탄핵 이후의 지금은 어떤 시간인가? 개인적인 의미일 수도 있고, 작가의 작업세계에 대한 의미일 수도 있다. 그리고 이번 전시 시점을 일부러 탄핵 이후, 대선 이후로 잡았는지?

지난 10년은 지난 20년과 많이 다른가. 물론 다르다. 물론 같다. 지난 겨울의 힘겨웠던 시간이 단지 박근혜의 탄핵을 위해서였는가 스스로에게 묻는다면 그것만은 아니기에, 탄핵 전과 탄핵 후의 달라진 나를 묻기 어렵다. 아트선재센터의 개인전은 2013년 하반기로 잡힌 것이었다. 미술관과 내 개인사정이 기이하게 뒤섞이면서 해마다 연기를 거듭해 거의 4년을 끌었다. 지난해 내가 독일을 오가고, 큐레이터 한스 D. 크리스트 씨가 한국을 오가며 이번 전시를 협의했다. 겨울에 이런 급변상황이 발생할 거라곤 예측할 수 없었다. 그 내용을 버릴 수는 없었기에 급히 추가한 작업이 ‘거짓으로 쌓아 올린 산’이다. 4월로 예정됐던 전시를 6월로 늦춘 건, 어지러운 정치상황과 광장 노숙투쟁으로 인해 물리적인 준비기간을 갖지 못한 내 사정을 함께 고려한 결정이었다.


〈비상국가 - 제 4의 벽〉에서 당신이 느끼는 벽의 실체는 결국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우리가 항구적 비상사태라면, 그 비상사태를 설정하는 권력은 여전히 같은 방식으로 - 특히 대선 이후에도- 작동한다고 보는가?

벽은 나 자신일지 모른다. 우리는 70여년의 분단체제 속에서 모순적일 수밖에 없는 자신의 원인을 밖에서 찾으려 했지만, 문제는 언제나 안에 더 많았다. 북한과 마주한 경계면은 군사적 긴장과 충돌이 이어지는 현실의 벽인 동시에 적에 대한 과대망상을 통해 권력의 위기를 관리해준 가상의 벽이었다. 연극용어인 ‘제4의 벽’ 개념을 빌리면 무대 위의 남한은 객석의 북한 과 사이에 가상의 벽을 세우고 연극에 몰두한다. 그러나 배우도 알고 관객도 안다. 실은 이것이 우리를 향한 연극인 동시에 너희를 향한 연극이라는 것을. 남북한은 서로에게 배우인 동시에 서로에게 관객이 되어주었다. 권력의 대물림 속에 펼쳐지는 영웅서사와 의식들. 북한만이 극장국가일까. 남한 또한 다르지 않다. 나는 남북의 적대적 공생관계를 거울관계라 부른다. 내 안에 네가 있어 왔고, 네 안에 내가 있어 왔다.

달라진 정권은 새로운 풍경을 펼치려 노력하겠지만, 쉽지 않을 것이다. 비록 남북이 긴장완화를 위해 노력한다고 해도 근대경찰국가의 정체성을 버리기란 어려울 것이다. 어떤 권력이든 어느 순간 위기를 맞을 것이고, 자신들의 위기를 사회전체의 위기인양 포장하는 비상사태의 포장술에 매혹될 것이다.

 

글 석현혜 기자  이미지 제공 아트선재센터
해당 기사는 2017년 7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