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성원 〈타인의 풍경〉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의 감독 웨스 앤더슨은 자신의 작품에 영감을 준 소설가 슈테판 츠바이크를 언급하며, 그의 말을 시나리오에 담는다. “사람들은 작가가 늘 상상력을 발휘하고, 사건과 에피소드를 끝없이 지어내고, 무無에서 스토리를 상상한다고 생각하는데, 이는 아주 흔한 오해다. 사실은 그 반대다. 대중에게 작가로 알려지면 그때부터는 대중이 작가에게 인물과 사건을 가져다준다. 잘 지켜보고 귀담아듣는 능력을 유지하는 한 이야기들은 계속 찾아온다.” -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시나리오 인용구


어느 소설가의 집. 저녁이 되면 그 집에 찾아와 주인의 식탁에서 자신들의 하루를 이야기하고 나누는 사람들. 그 이야기를 소설가는 조용히 듣다가 대화 내용 중 흥미로운 문장을 발견하면 그 문장을 바탕으로 글을 쓰기 시작한다. 소설가 슈테판 츠바이크의 이야기이다. 원성원 작가의 신작 〈타인의 풍경〉을 보면서 소설가 슈테판 츠바이크의 집과 그의 식탁에 둘러앉아 이야기하는 사람들의 저녁이 연상됐다. 원성원 작가 또한 슈테판 츠바이크처럼 타인의 이야기에서 시작하기 때문이다.

그의 작품에는 항상 타인의 이야기와 타인의 생활, 그리고 타인의 감정이 있다. 유학 시절 친구들의 꿈꾸는 방을 이미지화 한 〈Dream room〉(2003-2004)을 비롯해, 지인들의 과거 이야기를 바탕으로 미래를 상상해 본 〈Tomorrow〉(2008), 자신의 유년 시절을 객관화하여 드러낸 〈1978년 일곱 살〉(2010), 주변 사람들의 성격을 분석한 〈Character Episode I〉(2013). 그리고 5월 11일부터 6월 25일까지 갤러리 아라리오 서울에서 전시 중인 신작 〈타인의 풍경〉이 그러하다.

전문직을 가지고 있는 지인들의 직업에 호기심을 가진 그는 그들의 직업적 세계로의 접근을 감행한다. 그는 그들과 자주 저녁 식사를 가지며 이야기를 들었다. 대화 속에서 그는 파도가 치는 언론가의 바다를 만나고, 권력을 쫓는 공직자들의 얼음기둥에 닿고, 네트워크의 흐름을 감지하고 연결하는 IT 전문가들의 물풀에 이른다. 슈테판 츠바이크의 저녁이 모든 이웃들에게 열려있듯, 원성원 작가 또한 타인을 초대하기 위해 항상 바깥을 향해 문을 열어 놓는다. 수많은 사람들이 들어가 함께 대화하고 상상하는 그의 방을 찾았다.

 


연구원의 선인장, 2017, c-print, 120x200cm


교수의 바람들판, 2017, c-print, 120 x 200 cm



공직자의 얼음기둥, 2017, c-print, 120x200cm


주로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상상을 시작하는 것 같다. 이번 작업에서는 주제를 ‘직업’으로 잡았다.
개인적으로 큰 수술을 통해 몸이 약해지고 경제적인 어려움에 닥치자 일반적인 살아남기에 대해 생각해봤다. 내가 돈이 있고 건강할 때는 철학이 뭐고 삶이 뭐고 고차원적인 걸 생각했는데, 몸이 안 좋아지고 금전적이 어려움 속에 있으니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잘난 사람들의 삶이 궁금했다. 금전적으로 여유 있고 사회적으로 성공했다는 사람들은 어떠할까. ‘내가 약사라면’, ‘내가 금융인이라면’이라는 상상을 오래했다.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되면 권력은 필요 없고 돈은 얼마나 있으면 행복한가에 대한 질문에서 출발했다. 그리고 우리는 각자 학창 시절을 지나서 대학에 진학하고 진로를 결정해서 지금의 직업을 가졌는데 우리가 도착한 풍경은 어떨까. 우리는 잘 도착했을까. 우리가 일을 하며 사는 풍경은 어떨까. 사무실, 병원, 약국, 금융거래소와 같은 단어로 표현되지만 그 이상이 있을 거라고 생각해서 그걸 보여주고 싶었다.

작품 〈언론인의 바다〉에서는 여러 방향에서 휘몰아치는 파도 속에서 사건을 공정하게 바라봐야 하는 언론인의 모습을, 〈IT 전문가의 물풀 네트워크〉에서는 가상공간의 네트워크를 물풀을 통해 시각적으로 드러냄으로써 네트의 흐름을 감지해야하는 IT 전문가의 모습을 이미지화시켰다. 또한 〈교수의 바람들판〉에서는 초식동물들 사이에서 집 위에서 방향을 잡아주는 교수의 모습과 대학 내의 건조한 풍경을 들판을 통해 드러냈다. 〈연구원의 선인장〉에서는 목표점에 도달하기 위해 경쟁하는 연구원들의 모습을 상징화했다.  


‘직업’의 경우 우리가 일반적으로 가지고 있는 선입견이 있다. 특히 이번 전시에도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권력을 가지고 있는 전문직 직종이 나타난다. 그런 선입견들이 이번 전시에 어떻게 작용했나
나 또한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나와 다른 사람이고 그들의 일은 세속적이고 돈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권력적이라 생각했다. 나와는 어떤 교집합도 없다고 생각하고 부정적으로 여겼다. 그러나 막상 그들과 내가 연결됐을 때는 너무나 같았다. 편차는 있지만 모두 같은 근심을 가지고 있어 놀랐다. 돈이 있지만 무시당하고, 먹고 사는 고민을 하고. 그래서 처음에는 다르다고 생각했지만 끝날 때는 같다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솔직히 각 작품마다 비판적인 지점이 다 있기도 하지만 특별히 그 직업적 풍경에 깊게 들어가서 선과 악을 나누려고 하지는 않았다. 이건 비판도 아니고 칭찬도 아니다. 좋고 나쁨의 판단은 보는 사람들에게 맡긴다. 약간 멀리서 바라보기 때문에 타인의 풍경이다. 내가 그 풍경 속에 쑥 들어가서 옳고 그름을 나누고 판단하는 게 아니라 살짝 바깥에서 바라보려는 것이다.

작품 속에 담겨진 직업의 당사자들과 많은 대화를 나누었을 것 같다. 그들은 가까운 지인들인가. 얼마나 많은 대화를 나누었나.
얘기는 어차피 늘 만나는 친구들이어서 평소부터 자주 했다. 가끔 직접 찾아가기도 했다. 저녁에 주로 만나서 술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는 식이었다(웃음)


전작에서는 콜라주된 사진들의 결합이 조금씩 어긋나고 충돌되는 느낌이었는데, 이번 작품에서는 레이어들이 하나의 결로 통일화된 느낌이 강하다.
내가 카메라로 찍어서 모은 이미지들은 내가 만든 기호이자 암호이다. 예전에 나는 그것들을 결합시킬 때 사람들이 일반적인 이미지와 다르게 보고 어긋나는 지점을 봐달라는 뜻에서 부딪치는 요소들을 많이 넣었다. 아마 그때 ‘나는 이런 생각을 하고 있으니 이 부분을 놓치지 말고 봐달라’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러나 지금은 모두가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관객들이 내가 만든 암호를 그대로 해석하기보다 ‘조금은 천천히 봐달라’는 식으로 생각이 바뀌었다. 그러한 내 생각의 변화가 이미지들의 어긋남 대신 하나의 흐름, 하나의 톤, 하나의 결로 형성된 것 같다.


그래서인지 많은 이야기를 전달했던 전작의 서사성보다 감각이 두드러지는 것 같다.
맞다. 예전에는 ‘마지막 버전은 이렇게 될거야’라는 스케치가 있었다. 이미 생각해놓은 그림이 있어서 그 그림을 찾아다녔다. 그런데 2년 전에 찾아간 장소가 2년 후에도 변함이 없었다. 난 2년이라는 시간이 지나는 동안 다른 경험을 했는데 2년 전의 장소와 그 그림은 안 변하고 그대로 있는 것이다. ‘난 2년 동안 생각을 멈췄나’, ‘난 그림을 만드는 기계였나’ 생각했다. 그래서 이번에는 끝나는 버전을 만들지 않고 그때그때의 감각에 집중했다. 그래서 촬영을 많이 다니게 됐다. 대충의 윤곽만 생각하고 계속 사진을 찍으러 다녔다. 예전에는 계획을 하고 다녔는데, 이번에는 그냥 날씨에 맞춰 출발해 우연에 기대서 사진을 찍었다. 감각에 기대서 사진을 찍고 택하고 그것에 따라갔다. 그것은 매우 모험적이지만 불안하기도 했다. 스케치가 없기 때문에 언제 끝나고 어떻게 끝날지 알 수 없어 매우 불안했다. 그런데 나도 모르는 그림을 그리고 있어서 재미있었다. 가령 〈IT 전문가의 물풀 네트워크〉의 경우 즉흥적으로 비만 오면 장소를 찾아다녔다. 내가 언제 이것을 끝내야겠다는 생각도 안했다. 어떤 사람들은 그래서 이야기가 없고 단조롭다고 생각하겠지만, 짧은 시처럼 아주 강렬한 것을 내가 원했다.


콜라주라는 작업을 회화가 아니라 사진매체를 통해 말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나의 작품의 시작은 실제 인물이다. 나는 허망한 이야기에서부터 시작하지 않는다. 새로운 걸 떠올리는 게 아니라, 실제 내 주변의 인물들을 보고 상상한다. 나는 어떤 인물을 이미지로 상상하는데 만나는 경험이 축적되면 뒷배경이 보일 때가 있다. 그것은 실제 인물과 실제 생활에서 상상 가능한 덩어리이다.

그러나 그림으로 그리면 처음부터 거짓말이게 된다. 나는 사실을 기반으로 말하고 싶다. 왜냐하면 내가 말하는 대상은 실제 인물이니까. 실제로 존재하는 사람을 내 상상과 더해서 다른 그림을 그리고 싶다. 그들의 생각을 내 머릿속에 넣은 뒤 뒤섞이고 합쳐져서 나의 대답과 함께 합쳐져서 새로운 것이 도출되는 것이다.

그러나 한편 카메라는 나에게 도구일 뿐이다. 사람들이 나에게 포토그래퍼라고 하는 데 나에게 잘 찍는 것은 의미가 없다. 나는 보통의 사진작가들처럼 한 컷이 중요하지 않다. 카메라를 잘 다룰 줄도 모르고 카메라 장비도 별로 없다. 나는 항상 파노라마로만 찍어서 렌즈도 별로 없다. 앞서 말한 것처럼 사진은 나에게 설치 개념이고, 나는 사진을 통해 모양만 가져온다. 디지털 카메라이기 때문에 사진으로 작업할 수 있었다.

 


언론인의 바다, 2017, c-print, 178x197cm


IT전문가의 물풀 네트워크, 2017, c-print, 178 x297cm


많은 사람들이 원성원의 작품을 콜라주로 등치시켜 생각한다. 콜라주라는 형식이 갖는 의미는 무엇인가
나는 원래 조소과 출신이어서 입체와 공간을 다루는 게 기본적으로 내장되어 있다. 그러나 직접 만들고 싶은데 체력의 한계가 있기 때문에 그걸 대신하는 가상의 3D 공간을 만드는 것이다. 사진은 평면이지만 내가 거기 들어가서 공간을 만든다고 생각한다. 사진은 나에게 인스톨레이션적인 개념이다. 그러니까 나는 사진을 단순히 평면이 아니라 공간으로 인식하는 것 같다. 그래서 콜라주는 한정된 사진 공간에서 내가 사용할 수 있는 무한대의 기법이다.

그런데 사람들이 콜라주라는 기법을 너무 크게 생각해서 작품의 기호체계나 의미에 관심이 없다. 이번에 또 콜라주냐고 묻는다. 유화작업을 한 사람한테 유화작업을 했다 말하지 않고, 조각하는 사람한테 왜 이번에 조각했냐고 물어보지 않을 것이다. 나에게도 콜라주는 그러한 작업 방식일 뿐이다. 이건 형식이다. 내용을 봐야 한다. 나는 콜라주라는 기술적인 것에 관심이 없다. 그보다 내용적인 것과 전달하는 체계, 내가 발견한 소재와 이미지가 중요하다.


보통 상상이나 공상은 혼자만의 자폐적인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타인의 이야기를 어떤 과정을 통해 상상하는가
다른 사람들은 혼자 생각하는 시간이 많아야 뭔가 떠오른다고 생각하는데 난 반대이다. 난 주변 사람들 때문에 정신이 혼란스럽고 정신이 없을 때 그 자리를 피하고 싶고 거기서 빠져나가려고 잠깐 공상에 빠진다. 현실을 기피하기 위한 것으로 말이다. 그래서 오히려 되게 짧은 시간에 상상한다. 스팟처럼 생각나는 것들은 바로 핸드폰에 메모한다. 제일 좋은 것은 지하철 탈 때이다. 거기서 다른 사람들을 관찰할 때 즐겁다. 모르는 사람들을 보면 캐릭터가 생각나기도 한다. 무언가를 해결하기 위해 책상에 앉아있으면 잘 안된다. 계속 부딪혀야 한다. 붕 뜬 먼 나라 이야기면 모르겠는데, 지금 여기에 있는 이야기를 말해야 하기 때문에 내 안에 심리적으로 자극이 많이 일어나야 상상이 더 잘된다. 그리고 어떤 캐릭터를 상상할 땐 비슷한 사람들을 계속 만나야 한다. 나에게 상상하는 것은 습관이 되어 있어서 쉬운 과정인 것 같다.


이번 전시에는 드로잉 작업도 함께 포함되어 있다. 사진 작품과 드로잉은 어떻게 관계하는가
전시된 드로잉 작품들은 일반적인 전문직 사람들이 아니라, 작가 생활을 하는 지인들을 담았다. 각 작품마다 다른 작가이고, 이미지는 그들의 상처와 관련이 있다. 모두 다 완벽하지 않지만 작가들은 유난히 그 상처를 중심으로 작업을 하는 것 같다. 상처를 덮으려고 하지만 덮어지지 않고, 덮으려고 하면서 그것이 그들의 소재가 되고 그게 작업을 이끄는 힘이 되는 것 같다.

드로잉의 경우엔 주로 내 이야기를 담는 방식이기도 하다. 내 이야기이기 때문에 감추고 싶은 것들이 있다. 사진으로 못하는 아주 개인적이고 감성적인 이야기를 드로잉으로 담는다고 볼 수 있다. 사진으로 이야기하면 다 들통난다. 남의 이야기는 내가 100% 가져올 수 있는 게 아니니까 사진으로 이야기할 수 있지만 내 상처와 나의 모습을 사진으로 보여주기에는 무서운 것 같다. 그걸 리얼로 전부 보여주고 싶지 않다. 그래서 내 이야기는 드로잉으로 그린다. 호기심을 유발해놓고 말하지 않는 추상적인 이야기들이다. 언뜻 보면 드로잉은 화려해보이지만 사실 드로잉은 더 무거운 이야기이다. 반대로 사진은 무거워 보이지만 가벼운 이야기들이다.


이번 시리즈를 준비하면서 가장 고민했던 점은 무엇인지 궁금하다.
나는 내 약점을 안다. 나는 그것을 벗어날 수 있을까 늘 생각한다. 사람들은 관성의 법칙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그러나 원래부터 있던 틀에서 벗어나려면 노력을 해야 한다. 추락하거나 올라가거나 하는 식으로 말이다. 똑같은 걸 반복하기는 싫다. 그리고 내가 컴플렉스적으로 생각하는 부분을 없애려고 했다. 가령 그것은 고정된 서사구조를 갖지 않으려는 것이다. 남들이 쓰는 객관화된 서사 구조를 따라 가지 않고 거기서 벗어나고자 했다.

그러나 한 계단을 올라가려는 게 추락하는 바탕이 되는 것 같다. 그래서 이번에는 신경 쓰지 않고, 느끼는 대로 표현하려했다. 누군가 이번 작품이 후퇴했다고 말하더라도 추락이든 하락이든 내가 생각하는 걸 솔직하게 표현했다.

 

글 오은지 기자  이미지 제공 갤러리 아라리오 서울
해당 기사는 2017년 6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