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룡, 〈오답노트 : 특이한 점〉

이 사진들은 모두 오답이다. 중앙일보 청와대 출입기자인 김성룡 작가가 작업한 이 사진들은 모두 데스크에 올릴 수 없는 사진이다. 그러나 이 오답은 정답으로 끝나지 않아서 우리에게 다시 어떤 질문을 던진다. 이 노란 점은 무엇인가? 누구를 그리고 무엇을 위한 것인가?

지난해 제7회 일우사진상 ‘올해의 특별한 작가’ 사진기자 부문을 수상한 김성룡 작가는 오랫동안 ‘신문에 게재되지 않는’ 오답 사진들을 촬영해왔다. 결정적 순간이 아니라, 그 순간의 이후나 이전, 혹은 의도적으로 클로즈업하거나 일반적인 사진의 프레임을 벗어나 그 너머의 장면을 그는 담는다.

특히 일우사진상 수상 기념전으로 지난 3월 17일부터 4월 19일까지 일우스페이스에서 전시된 〈특이한 점〉 시리즈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자리를 의전용 노란 점으로 시각화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청와대 최고 의전인 박근혜 전 대통령의 위치를 바닥에 붙여진 특이하고 이상한 점 하나로 축소해 대상에 대한 기존 인식과의 불일치를 시도한 것이다. 그 간극은 분명 정답을 겨냥하고 있지 않다. 김성룡 작가를 만나 그가 의도적으로 행하는 이 오답의 이유를 물었다.

 


서울 잠실, 2016


 세종문화회관, 2016



이번 전시, 〈오답노트 : 특이한 점〉에 대해 설명해달라
〈오답노트〉는 취재 과정 중에 찍은 사진이지만, 데스크에 올리지 못하는 사진들이다. 즉 정답이 아닌 오답들에 대한 것이다. 가령 모두가 경찰청장을 찍을 때 경찰청장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모습을 담거나, 종이비행기를 날리는 순간이 아니라 다 날리고 난 이후의 모습을 촬영했다. 혹은 사람들이 보고 있는 지점이 아니라 그 지점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표정을 담기도 한다.

그 중 지금 전시하고 있는 〈특이한 점〉은 이 오답노트에 담긴 여러 시리즈 중 하나이다. 2016년 1월 말부터 청와대 출입사진기자로 활동하면서 발견한 박근혜 전 대통령의 의전용 스티커 점에 대한 것이다.


어떻게 박근혜 전 대통령이 아니라, ‘점’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나.
청와대 출입 기자로 드나들다 보니까 어느 순간 이게 보였다. 사실 어떤 행사에나 동선이 필요하고 스티커가 필요하다. 그러나 단순한 스티커가 아니라 스티커에 형광까지 부착돼 있었다. 그 형광 물질은 안전을 위한 반사띠에 주로 사용하는 거다. 공사현장이나 경찰 수사 현장, 청소하는 곳에 쓰인다. 그런데 손으로 일일이 만든 그 형광색 점이 박근혜 전 대통령 행사에 있었다. 다른 정부 시절 청와대를 취재한 사람들에게 물어봤는데 이전 정부에서도 스티커는 다 있었지만, 겉에 장식이 없었고 빈도가 많지 않았다고 했다. 그러나 박근혜 전 대통령 재임 기간에는 필요 없는 곳까지 심하게 붙였다. 가령 케냐 대통령 자리에는 없는 스티커가 박대통령 자리에는 있었고, 연단이 하나밖에 없는 장소까지도 다 붙어있었다. 연단에 그냥 올라가면 되는 쉬운 경로까지 다 붙인 게 내 눈에는 과잉 의전처럼 비춰졌다.



청와대 본관,2016


강원도 홍천, 2016


청와대 본관, 2016

오답노트에는 또 어떤 사진들이 있는지 궁금하다
원래 박근혜 전 대통령이 퇴임하면 〈특이한 점〉을 비롯하여 오답노트에 있는 다른 시리즈도 포함해 전시하고 싶었다. 내 PC에 있는 사진 폴더명 중 하나가 ‘그녀를 위하여’ 이다. 점뿐만 아니라 박 전 대통령을 위해서 움직이는 주변 사람들의 풍경들을 담았다. 기념 사진을 찍기 위해 몸 검색을 마치고 몇 시간씩 대기하는 사람들의 사진들, 대통령 도착 신호를 주기 위해 서있는 사람들, 대통령을 맞이하기 전 예행연습을 하는 사람들. 그 모든 풍경들이 ‘그녀를 위하여’ 이루어지고 있었다.


전시에서 사진 배치는 무엇을 중심으로 신경 썼는가
점에서 출발해서 주변의 상황을 보여주는 식으로 디스플레이했다. 처음에는 이 점이 무엇일까 궁금증을 주고, 점은 조금씩 넓어진다. 그러다 점은 작아지고 주변 상황은 커지면서 대통령을 기다리는 주변의 상황을 파악할 수 있게 배치했다.


데스크에 받아들여지지 않는 오답 사진을 계속 찍는 이유는 무엇인가.
일종의 지루한 것에 대한 몸부림이었다. 취재에는 기본적인 양식이 따르고 거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내 사진 같지 않아 신문 사진을 찍는 데에 아쉬움을 느꼈다. 신문이 원하는 사진은 똑같기 때문에 이게 내가 찍는 건지 누군가 원하는 사진을 내가 왜 찍어주는 건지 모르겠다는 회의감이 들었다. 마치 내가 카메라의 일부인 것 같았다. 신문 1면에 엄청 크게 쓰여도 그게 내 사진 같지 않았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다 해주지 못하기 때문에 내 사진이 아닌 것 같았다. 그래서 내 생각과 감정 표현하려는 욕구가 있었던 것 같다.


사진작가와 사진기자 사이에서 본인의 정체성은 어느 쪽에 더 가깝나
나는 그게 일치되기를 바란다. 근데 사실 그게 일치되지 않아서 오답노트라는 게 생긴 거다. 나는 오답노트에 찍힌 사진들이 신문에 쓰였으면 좋겠다. 근데 아직까지는 취재 사진에 유연성은 없다. 근데 독자들도 과연 그걸 원하고 있을까.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변하지 않고 이어져 내려오는 형식일 뿐이다. 사람들이 이미지를 보는 수준은 높아졌는데 신문에 게재되는 보도 사진은 거의 옛날 방식을 그대로 고수한다. 외국신문 사진을 많이 받아보는데 나의 오답이 외국에서는 많이 사용되고 있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그게 포토저널리즘이 아니라는 인식이 아직 많다.

 

글 오은지 기자
해당 기사는 2017년 5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