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환 사진집 「을숙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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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 아닌 섬, 을숙도(乙淑島)

글 김형숙 / 여행작가

 
‘철새들의 낙원’이라는 별칭을 가진 을숙도.
낙동강 물길의 흐름이 점차 느려지면서 오랜 기간 토사가 퇴적되어 만들어진 섬이었다. 요즈음엔 낙동강 하굿둑과 산업도로로 인해 배가 아닌 차로 갈 수 있는 곳이다.
야외학습장, 낙동강하구에코센터, 야생동물치료센터, 산책로 등 여러 가지 시설이 들어선 지금은 옛 모습과는 확연히 다르다. 하지만 여전히 생태공원으로서 가치를 지니고 있다.
 

1996년부터 2001년까지 6년간 을숙도(부산시 사하구 하단동)를 오간 사진가 김정환의 발길이 대단했다. 그의 흑백사진은 오래전 을숙도 모습을 아련하게 생각나게 한다. 갈대숲 사이로 흐르는 물길, 해질 무렵 아름답게 펼쳐지는 붉은 아름다움, 철새떼들이 날아오르는 모습, 청춘남녀들의 데이트장소로 음악이 흐르던 곳…


 
사진 속 풍경을 들여다 본다.
파밭을 일구고 대파 수확을 하는 부지런한 주민의 손길.
우거진 갈대밭 사이로 널브러진 쓰레기들,
난개발로 파헤쳐진 흙길을 걷는 주민들,
안타깝게도 을숙도에 부는 세찬 변화의 바람도 함께 담겨 있다.
부산 시민들의 생활쓰레기 매립장, 준설토 적치장, 분뇨처리장으로서 오염된 폐수가 넘치고 철새들이 죽어가고 있는 모습 등등…


문득 몇 년 전 요산문학관(부산시 금정구 남산동)에 찾아갔던 일이 생각났다. 소설가 김정한(1908-1996)이 1966년에 발표한 ‘모래톱 이야기’의 배경이 된 섬, 주머니처럼 생겼다고 해서 부른 이름, 조마이섬.
갈밭새 영감이 그렇게 지키고 싶어했던 곳. 소설 마지막 부분의 ‘황폐한 모래톱’ 이란 글자가 사진위에 오버랩되면서 가슴이 시려왔다.


 
한 신혼부부가 ‘조마이섬’에 여행가고 싶어했다. 어딘지 몰라 헤매다가 작가와 연락이 되어 을숙도(예전의 을숙도와 일웅도)임을 알게 되었다는 얘기가 있다.

 
1966년 을숙도 등 낙동강 하구 문화재보호구역(천연기념물 179호 철새도래지)으로 지정되었다. 1987년의 낙동강 하굿둑 완공 이후에도 여러 가지 공사와 매립으로 철새들이 점차 줄어들게 되었다. 인공생태계 조성으로 재탄생한 을숙도 공원이 이젠 더 이상 파괴되지 않기를 바란다.

 
당시 황폐해져가는 모습을 담은 이 사진들은 우리에게 매우 소중한 자료이다. 과거 상처를 덮기보다는 깨달음과 반성을 제시하는 지침이 되면 좋겠다. 지탄하기보다 새로운 희망의 음조가 되어 퍼져나가기를 기대해본다.

 
길가 수렁과 축축한 둑에는 빈틈없는 갈대가 우거져 있었다. 쑥쑥 보기 좋게 순과 잎을 뽑아올리는 갈대청은, 그곳을 오가는 사람들과는 판이하게 하늘과 땅과 계절의 혜택을 흐뭇이 받고 있는 듯, 싱싱해 보였다.
-김정한의 ‘모래톱 이야기’ 중에서
 
 
이제는 사람이 자연과 더불어 싱싱하게 공존하는 좋은 땅, 살아 숨쉬는 땅을 그려본다.